다윈이 1859년에 출간한『종의 기원』은 영국을 뒤흔들고 10년 이내에 전 유럽을 정복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확고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진화론을 배운 우리로서는, 당연한 이론으로 진화론을 생각하지만 『종의 기원』출간
당시에만 해도 크게 환영받지 못한 이론이었다. 창조론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사유 틀을
전부 뒤바꿔야했기 때문이다.
문화사학자 박성관은 이 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전읽기 세미나를 하던 중 다윈에 꽂혔어요. 생물학자로서가 아닌, 자연관과 인간관을 바꾼 고전 사상가로서의 다윈이었죠.
진화 자체보다는 사상적인 면을 연구하고 싶었어요.”
19세기, 이야기로서의 진화론-문학 작품 속에 담긴 진화론의 의미
19세기는 과거에 주목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 그러한 영향의 가치, 잊혀진 과거를 되찾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한 시기였다. 한 가지 예로 프로이트의 경우 현재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어떤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전적으로 다윈의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 와중에 많은 문학 작가들은 진화론적 사유를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다윈 “기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 겪어온 삶의 과정!”
인간은 이 세계와 생명, 혹은 나 개인이 처음 비롯되던 순간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 없다. 다만 그것에 대한 의미부여는 모두 다를 것이다. 이 우주가 처음 생겨나던 순간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된 일인가. 단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체 어떤 근거가 있는가? 다윈은 그 기원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것이 이후 겪어온 삶(ordinary generation, 과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명약관화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 9강 강의노트
다윈의 진화론은 마치 기원을 중시하는 사상인 것처럼 악용되어 왔지만 실은 이처럼 과정 자체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이 핵심에 깔려있다. 하지만 다윈 자신의 사상과 의도가 어찌되었던 간에 다윈의 사상 혹은 『종의 기원』은 다윈의 이름 아래 지나칠 정도로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어쩌면 이것은 다윈이 본 생물의 ‘변이’처럼 그 자신의 이론 역시 ‘변이’를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박성관(수유+너머 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부터 학문자율 연구공동체 <수유+너머> 연구원으로 활동해 왔다. 찰스 다윈 연구에 매진하여 ‘종의 기원’에 관해 집필 및 강의하였으며, 생물학과 물리, 수학 등으로 관심사를 넓혀왔다. 현재, 고전읽기 세미나를 계속하며 청소년 강좌와 '다윈'에 대한 일반 인문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비로운 소리의 공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일본어의 매력에 빠져,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을 큰 낙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