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같이 등장한 변방의 대문호, 보르헤스
1961년, 전 세계 문학계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영/미 출판계가 주축이 되어 제정한 포멘터 상 제1회 수상자에 낯선 변방의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미 「고도를 기다리며」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사무엘 베케트와 공동수상의 영예를 안은 인물은 바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쉽게 잡히지 않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가볍게 풀어버리는 글솜씨,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참신한 전개, 개인의 개별성과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발언, 독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견해 등은 그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이자 현실 그 이상의 차원에 존재하는 대스승의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전 세계 언론이 보도한 그의 사진 대부분이 빛깔 하나 없는 노년기의 흑백 사진이었던 것에는, 보르헤스가 지닌 대스승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가미되어 있었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자신을 극복하고 싶었던 보르헤스의 평범한 욕망
그러나 이렇게 보르헤스를 존경하는것을 넘어서서 숭배하려는 경향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폭을 협소하게 만들어버린다. 보르헤스가 나고 자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적 상황, 부모님의 양육방식과 그의 소극적인 성품 등을 살펴보다보면, 신비한 이미지에 가려져 있던 인간 보르헤스를 만나게 된다.
그가 환상적인 ‘거울’ 개념을 자주 사용한 것은 어릴 적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했던 기억에서 비롯하였다. 백과사전의 위치, 읽은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억하며 다채로운 지식을 뽐냈던 것도 그의 소심함 덕분이다. 그는 책을 빌리기 위해 사서와 대화하는 것조차 두려워, 혼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람실에서 죄다 암기해버릴 때까지 백과사전을 읽었던 것이다.
소심했던 보르헤스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결여된 남성성을 선망하였다. 혈혈단신의 남성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남자다움을 겨루던 초기의 탱고, 동네의 건달인 콤파드리토의 결기를 동경했던 보르헤스는 결국 이를 소재로 하여 『불한당들의 세계사』,「브로디의 보고서」 등의 걸작을 남겼다. 이처럼 보르헤스는 단편소설로 명성을 떨쳤으나, 사실 그의 문학적 출발은 시였다. 이 강좌는 보르헤스의 첫 시집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열기』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욕망이 어떻게 문학에 녹아들었는지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석균(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하고 페루가톨릭대학교에서 히스패닉문학 석사 학위를,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교에서 중남미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회장, 『지구적 세계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