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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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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19세기 파리의 아케이드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었다. 유리와 철골로 지어진 화려한 통로는 자본주의가 꿈꾸는 환상의 공간이자, 욕망이 상품으로 진열된 판타스마고리아였다. 발터 벤야민은 이 아케이드를 통해 근대성의 기원을 탐색했다. 13년간 파리 국립도서관에 파묻혀 수집한 자료들, 수백 개의 인용과 발췌로 구성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미완으로 남았지만 20세기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강의는 벤야민의 독특한 삶과 사상을 핵심 개념들을 통해 입문하는 과정이다. 유태계 망명 지식인으로서의 벤야민, 수집가이자 산책자로서의 벤야민, 그리고 알레고리와 변증법적 이미지로 역사를 사유한 철학자 벤야민을 만난다. 아케이드라는 구체적 공간에서 출발해 판타스마고리아, 아우라, 기술복제, 역사철학에 이르기까지 벤야민 사상의 전체 지형도를 그려본다.
■ 강의특징
이 강의는 벤야민의 난해한 텍스트를 개념 중심이 아닌 이미지와 맥락으로 접근한다. 벤야민 자신이 "개념적 언어가 아닌 사물의 이미지로 투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던 것처럼, 강의 역시 19세기 파리의 구체적 풍경들—만국박람회, 파노라마, 백화점, 패션, 매춘—을 통해 사상을 펼쳐낸다.
벤야민의 아포리즘적 글쓰기, 몽타주 방식, 트락타트적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생애와 인간관계를 함께 다룬다. 아샤 라시스, 브레히트, 아도르노 같은 동료들과의 교류, 모스크바 여행, 파리 망명 생활이 어떻게 사상으로 응축되었는지 살핀다. 또한 『독일비극의 기원』, 『일방통행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역사 철학 테제』 등 주요 저작들을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연결해 벤야민 사상의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건축, 회화, 문학, 매체미학을 가로지르는 벤야민의 학제적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이 얼마나 구체적 현실과 밀착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 추천대상
이 강의는 벤야민을 처음 접하지만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입문자에게 적합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방대함 앞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이들에게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문화이론, 매체미학, 모더니즘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벤야민이야말로 필수 통과 지점이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문화, SNS의 이미지 범람, AI 생성 예술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벤야민의 '아우라', '판타스마고리아', '기술복제' 개념은 여전히 유효한 도구다.
벤야민의 다른 저작을 읽었지만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던 이들에게도 유익하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나 『역사 철학 테제』를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맥락 안에서 재배치하면 벤야민 사상의 일관된 흐름이 보인다.
문학, 예술사, 건축, 도시연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추천한다. 19세기 파리라는 공간을 통해 근대성을 사유하는 벤야민의 방법론은 현대 도시를 읽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 수강팁
벤야민의 글쓰기는 직선적이지 않다. 그는 개념을 정의하고 논증하기보다 파편들을 배치하고 이미지를 겹쳐 놓는다. 따라서 강의를 들을 때도 즉각적인 이해를 기대하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미지를 먼저 받아들이는 편이 좋다. 한 번에 완벽히 소화하려 하지 말고, 반복 수강하면서 개념들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을 포착하는 것을 권한다.
강의에서 언급되는 19세기 파리의 시각 자료들—아케이드, 파노라마, 만국박람회 사진 등—을 검색해서 함께 보면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벤야민은 이미지를 통해 사유한 사람이므로, 당대의 시각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원문을 펼쳐놓고 강의를 듣는다면 더욱 좋다. 강의에서 다루는 부분을 직접 확인하며 벤야민의 문체와 인용 방식을 체감할 수 있다. 물론 책 없이 강의만 들어도 전체 윤곽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하다.
개별 강의마다 핵심 개념(판타스마고리아, 알레고리, 아우라, 변증법적 이미지 등)이 집중적으로 다뤄지므로, 특별히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면 해당 강의를 먼저 듣고 전후 맥락을 채워가는 방식도 가능하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벤야민을 통해 일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퇴근길 거리의 간판들이 '상품의 판타스마고리아'로 보이기 시작했고, SNS의 이미지 범람이 '아우라의 파괴'로 이해되었다는 후기가 많다. 철학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을 읽는 도구임을 체감한 것이다.
입문자들은 벤야민의 전체 지형도를 얻었다고 평가한다. 방대하고 파편적인 저작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이제 원문을 펼쳐볼 용기가 생겼다는 반응이다. 특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해설이 현대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주었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이미 벤야민을 어느 정도 공부한 수강생들은 입문 수준을 넘어서는 심화 내용을 기대했다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핵심 개념에 대한 더 깊은 텍스트 분석이나 철학적 논증을 원했던 이들에게는 다소 폭넓게 훑어가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강의 스타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벤야민의 삶과 주변 인물, 시대적 맥락을 풍부하게 들려주는 방식이 인간적이고 흥미롭다는 평과, 때로 산만하게 느껴진다는 평이 공존한다. 명쾌한 개념 정리보다는 사유의 과정을 함께 걷는 스타일이므로 선호도가 갈릴 수 있다.
■ 마치며
벤야민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오른 그는 스페인 국경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 미완성이야말로 벤야민다운 완성일지도 모른다. 그는 체계를 완결하려 하지 않았다. 파편들을 모으고, 이미지를 배치하고, 독자가 그 사이에서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 강의 역시 벤야민에 대한 완결된 해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벤야민이라는 사유의 우주로 들어가는 여러 입구들을 열어준다. 아케이드를 거닐듯, 강의를 산책하며 각자의 속도로 벤야민을 만나기를 권한다.
19세기 파리가 근대 자본주의의 유년기였다면, 21세기 우리는 무엇의 유년기를 살고 있는가. 벤야민의 시선으로 지금 이 순간의 판타스마고리아를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깨어 있는 꿈을 꿀 수 있다. 상품의 환영 너머, 역사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불꽃을 건져 올리는 것—그것이 벤야민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권용선(인문학자)
인하대학교 국문학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10년대 근대적 글쓰기의 형성과정」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문자율공동체 <수유+너머>에서 활동하며, 철학, 문화, 역사, 책 읽기 등 다방면에 걸쳐 공부하고 글을 썼다.
현재는 인종과 계급, 여성, 언어 등에 대한 생각을 넓혀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