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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에게도 사유는 관통이고 굴착이고 천공이고 무엇보다 버티기였다. 절망적인 시대의 상황과 맞서고자 하는 사유는 언제나 가망 없는 딜레마와 더불어 천공의 여행을 시작한다. 하나는 불가능성 앞에서의 절망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하는 가능성에의 책임이다.
풀릴 수 없는 문제 앞에서 그러나 풀어야 하는 책임을 포기하지 않기 - 이것이 아도르노에게는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사유의 책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철학"이 맞서야 하는 운명이었고 그래서 아도르노의 사유 역시 시멘트 바닥을 천공하는 지렁이의 사유였다.
그러나 아도르노에게는 '부정 변증법'적인 희망이 있었다. 그 희망은 "가능성을 위해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껴안는" 용기 속에서만 눈뜨는 희망이었고 그 용기를 아도르노는 '버티기(Standhalten)'라고 불렀다.
버티기, 불가능성 앞에서 물러나지 않기,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능성을 짜내기 위해서 논리적 구축(Begriffliche Konstruktion)을 포기하지 않기, 어두운 밤하늘에 제멋대로 흩어진 별들 사이에 끝없이 선을 그어 별자리를 찾아내듯 현실 속에 파편처럼 흩어진 사실들을 조합하고 허물고 또 조합하기를 멈추지 않기... 그 지루하고 집요한 반복의 버티기, 지렁이의 가엾고도 헛된 천공... 그러나 아도르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그 버티기의 헛된 노동 끝에서 갑자기, 예기치 않게, 그러나 뉴튼의 무르익은 사과처럼, 그러니까 필연적인 우연처럼, 불가능성 속으로 '마주 들어서는 것 (Das Hinzutretende)'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불가능성 속에서 가능성은 깨어날 것이다, 흩어진 별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별자리처럼, 시멘트 바닥 밑에서 떠오르는 서늘한 습지처럼...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