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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는 흔히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유명한 서양철학자를 떠올리지, 묵자, 한비자와 같은 옛 동양 사상가를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처럼 서양학자들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고 일컬어지는 '철학'을 선점해버린 듯하다. 그러나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개한 풍부한 사유를 잠깐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이내 서양철학이 대신할 수 없는 그 풍요로움에 놀라게 된다.
춘추전국시대에 9개 정도의 다양한 학파가 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제자백가에 속한 학자들은 주로 선비 계층이었는데, 당시
선비들은 통치할 영토를 갖지 못했기에, 특정 지역에 귀속되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기회를 찾아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 ‘현실 참여적인 사상들’이 점차 싹텄고, 오랫동안 동양의 근본적 사상체계로 존립해 온 유가(儒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도가(道家) 등의 유파가 확립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소설, 삼국지(三國志)를 보자. 정치와 병법 외에도 자연지물, 농업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은 지략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은 현실참여적인 당시 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도록 진나라의 사상적 토대가 된 것은 한비(韓非)로 대표되는 법가였다. 법가는 ‘인간이란, 이기적 존재’라는
전제하에, ‘법’과 같은 적절한 채찍으로 인간 행위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은 학파이다.
양주(楊朱, BC440?~BC 360?)는 당대의 중심 사상인 법가에 반기를 들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노력으로 삶을 긍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자 수단이며, 개인의 자유로운 삶의 가치야말로 진정 중요한 것이다. 이는 국가를 위한 희생을 바라는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껄끄러운 것일 수밖에 없었기에, 양주는 법가로부터 비난받았으며, 맹자(孟子) 등 유가철학으로부터도 자신만 챙기는 '이기주의자'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이제 ‘개인을 억압하는 집단의 모습을 간파한 아나키스트적 인물’이었던 양주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의 사상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가치를 찾고자 했던 근현대 모습과 분명 닮아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만개할 수 있었던 데는, 분명 그들의 활발한 토론문화가 기인하는 바 크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수없이 많은 학자가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며 방대한 사상을 펼치고 논쟁을 벌였다. 인도와 한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그동안 서구 사상에 젖어, 동양철학의 진면목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묵자, 양주, 장자 등 춘추전국시대를 수놓은 ‘제자백가’와 인도의 나가르주나, 그리고 왕충, 임제, 이지 등의 동양철학자 7인을 살펴봄으로써, ‘철학≒서양사상’이라는 기존 관념을 수정해 보자. 특히 강신주 교수는 동양철학의 스펙트럼을 보여줄 더없이 적합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강신주(철학자)
문사철(文史哲) 기획위원으로 서울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노장사상을 전공했지만 서양철학에도 해박하며,
강연과 저서를 통해 '쉽게 읽히는 인문학'을 모토로
'철학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동서비교철학과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소통을 시도하는
다수의 철학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