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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 악(惡)이란?
서양의
근대 철학자 칸트는 ‘악’을 우리가 이성의 명령에 따르는 대신 자기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채울 때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부당한 욕망을 억누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성의 명령에 따를 것이다. 칸트에게서 악은 우리가 이성이 아닌 자기애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칸트의 악 개념이 비록 악을 저지른 사람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긴 하지만 이러한 악의 규정은 살인이나
강도 등과 같은 악행 자체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악’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우리는 ‘악’을 새롭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만나는 악행들은 대개 우리를 공포스럽게 하거나 분노케 한다. 즉 ‘악’은 끔찍하고 섬뜩한 것, 달리
말해, ‘돌이킬 수 없는 몹쓸 짓을 저지르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몹쓸 짓은 누군가의 ‘보다 나은 삶의 가능성’을 짓밟거나 빼앗아가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악에 대한 전방위적 고찰
‘몹쓸
짓’으로서의 악은 사탄이나 악마와 같은 ‘악의 실체’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게 아니다. 오늘날 악마가 비록 낡아빠진 생각의 유물처럼 간주되긴
하지만 종교의 영역에서는 널리 믿어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믿음은 그 사실만으로도 해당 사회에 대한 훌륭한 설명의 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성경 속에 나타난 사탄과 마귀 또는 귀신이나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악의 의미를 보다 풍요롭게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 속 주인공의 살인을 통해 ‘정당한 악’이 가능한지를 고찰해 보고, ‘보편적 악’이 성립될 수 있는지를
성찰해 보며, 마지막으로 한국영화 「아저씨」 속에 나타난 악의 모습들을 분석해 봄으로써 ‘악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구체화하고자 한다.
구연상(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논문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불안. 하이데거의 기분 분석을 바탕으로」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하이데거학회 간사,
‘우리말로 철학하기’,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의
총무이사를 역임하였다.
하이데거 철학 및 우리 말과 문화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