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기계(Machine désirante) 개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근본적으로 뒤집은 혁명적 사유다. 이들은 욕망을 결핍이 아닌 생산으로, 개인적 환상이 아닌 사회적 현실로 재해석했다.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생산이다
전통적인 정신분석학에서 욕망은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프로이트나 라캉에게 욕망은 본질적으로 결핍에서 출발한다. 아이가 어머니를 잃고, 그 상실감이 평생의 욕망을 만든다는 식이다.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는 『안티 오이디푸스』(1972)에서 이런 관점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들에게 욕망은 무언가를 '생산하는' 적극적 힘이다. 마치 공장의 기계가 제품을 만들어내듯, 욕망기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산출한다. 연인이 사랑에 빠진 상황을 보자. 기존 정신분석학이라면 이를 어린 시절 상실의 보상이나 결핍의 채움으로 설명할 것이다. 하지만 욕망기계 관점에서 보면, 연인들은 새로운 감정, 새로운 언어, 새로운 행동 패턴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그들만의 농담, 몸짓, 약속들이 만들어진다.
기계적 연결과 배치의 논리
욕망기계는 '기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계적 연결의 원리로 작동한다. 여기서 기계는 단순한 물리적 장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요소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기능을 발휘하는 모든 체계를 의미한다.
가장 기본적인 예가 '입-젖가슴' 기계다. 아기의 입과 어머니의 젖가슴이 연결될 때 수유라는 기능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 연결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입은 말하기 기계, 키스 기계, 먹기 기계로도 작동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이 창발한다는 점이다.
현대의 소셜미디어 환경을 보면 이런 기계적 연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명확히 보인다. 스마트폰-사용자-플랫폼-타인이 연결되어 '소통기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같은 연결이 때로는 '중독기계', '감시기계', '소비기계'로도 작동한다. 연결 자체는 같지만 작동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사회적 욕망과 정치적 무의식
들뢰즈와 가타리의 가장 급진적 통찰은 욕망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동하는 거대한 욕망기계를 생각해보자.
자본-노동력-상품-소비자가 연결되어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만든다. 이때 개인의 욕망은 사회적 욕망기계의 부품으로 작동한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갖고 싶은 개인적 욕망이 기술 발전, 광고 산업, 금융 시스템과 연결되어 거대한 사회적 기계를 돌린다.
하지만 이 기계는 완전히 통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욕망기계는 본질적으로 '분열증적'이다. 예상치 못한 연결이 생기고, 기존 시스템을 탈주하는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다. 1968년 5월 혁명처럼 학생-노동자-지식인이 예상치 못하게 연결되어 기존 사회 질서를 뒤흔드는 새로운 욕망기계가 창발한 것이다.
분열분석의 임상적 실천
이런 관점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기존 정신분석학을 대체할 '분열분석(schizoanalyse)'을 제안한다. 분열분석의 목표는 환자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욕망기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를 보자. 기존 정신분석학은 이를 과거의 트라우마나 억압된 욕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분열분석은 이 사람의 욕망기계가 현재 어떤 연결 상태에 있는지 본다. 직장-가족-사회적 기대가 만드는 억압적 기계에 포획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어떤 새로운 연결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지 탐색한다.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생활 패턴이 붕괴되면서 겪은 혼란도 욕망기계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출근-업무-사교라는 기존 기계가 멈추면서 새로운 연결을 찾아야 했다. 어떤 이들은 홈트레이닝-건강관리 기계를, 어떤 이들은 온라인학습-자기계발 기계를 만들어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기계 개념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체계적으로 전개되고, 『천 개의 고원』에서 더욱 정교화된다. 이들의 사유는 스피노자의 역량 개념, 베르그송의 생명론, 마르크스의 생산 개념을 창조적으로 종합한 결과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욕망기계론은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 우리는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기계들이 연결되고 분리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존재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결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