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질 들뢰즈의 사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들뢰즈는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의 주류를 이루던 동일성과 재현의 사유를 전복시키고, 차이와 생성 중심의 새로운 철학을 창조해나간다. 그의 사유 여정은 철학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모험이었다.)
1968년 3월의 파리는 학생 운동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뱅센 대학의 한 강의실, 질 들뢰즈는 학생들 앞에 서 있었다. 창문 너머로 시위의 함성이 간간이 들려왔다.
"오늘 우리는 차이에 대해 말할 것입니다," 들뢰즈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헤겔이나 하이데거가 말하는 것과 같은 차이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차이를 동일성에 종속시킵니다. 우리는 차이 자체를 긍정적인 힘으로 사유해야 합니다."
강의실에는 미셸 푸코, 펠릭스 가타리를 비롯한 당시 프랑스 지성계의 주요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들뢰즈는 계속했다.
"우리의 사유는 너무 오랫동안 동일성의 원리에 갇혀 있었습니다. 플라톤 이래로, 서양 철학은 차이를 부정적인 것으로, 동일성에서 파생된 것으로 취급해왔습니다. 그러나 실재는 차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차이는 생성의 원동력입니다."
이 강의는 후에 『차이와 반복』으로 출판될 그의 주저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책의 출판은 들뢰즈 사상 발전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철학적 목소리를 찾았고, 서양 철학의 전통에 근본적인 도전을 던졌다.
몇 개월 후, 들뢰즈는 자신의 작은 서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의 책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철학은 항상 초월성을 추구했을까?" 그가 중얼거렸다. "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코기토, 칸트의 선험적 범주... 모두 경험적 세계 너머에 있는 초월적 원리를 상정한다. 그러나 실재는 내재성의 평면 위에서 펼쳐진다."
들뢰즈는 펜을 들어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이것이 후에 『의미의 논리』의 초안이 될 것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의미가 물체와 언어 사이의 표면에서 생성된다는 독창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1969년, 파리의 작은 카페에서 들뢰즈는 정신분석가 펠릭스 가타리와 첫 만남을 가졌다. 이 만남은 들뢰즈 사상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당신의 책 『차이와 반복』을 읽었습니다," 가타리가 말했다. "당신의 철학적 개념들이 정신분석과 결합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함께 정신분석의 오이디푸스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욕망의 긍정적 힘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들뢰즈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철학은 항상 다른 영역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워집니다."
이 대화는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으로 이어지는 획기적인 협업의 시작이었다. 이 책들을 통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 '욕망 기계', '탈영토화' 등의 개념을 발전시키며, 위계적이고 이원론적인 서양 사유의 전통에 대안을 제시했다.
1988년 봄, 들뢰즈는 소르본 대학에서 스피노자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스피노자에게 있어 신, 자연, 실체는 모두 동일한 것의 다른 이름입니다," 들뢰즈가 설명했다. "그의 철학은 순수한 내재성의 철학입니다. 초월적 신이 아니라, 세계 내에서 표현되는 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의적 존재론의 핵심입니다."
이 강의는 들뢰즈가 평생 발전시켜온 내재성의 철학을 집대성하는 순간이었다. 스피노자를 통해 그는 존재의 일의성(univocity)이라는 자신의 핵심 개념을 정교화했다.
1991년,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출판한 후, 들뢰즈는 자신의 아파트 발코니에 서 있었다. 그는 심각한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말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개념은 창조되어야 한다," 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학의 임무는 기존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것이다. 개념은 사유의 사건이다."
이 시기 들뢰즈는 철학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정리했다. 그에게 철학은 단순한 관조나 반성이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 행위였다.
1995년 11월 4일, 들뢰즈는 자신의 파리 아파트 창문에서 몸을 던졌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많은 해석을 낳았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의 철학적 사유의 최종적 실천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신체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는 생성과 변화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 것인지도 모른다.
들뢰즈 사상 발전의 결정적 순간들은 단일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여러 만남과 교차점들의 연속이었다. 니체, 베르그송, 스피노자와의 철학적 만남, 가타리와의 협업, 그리고 예술, 과학, 문학과의 끊임없는 대화.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차이와 생성, 내재성과 생명력을 중심으로 하는 들뢰즈의 독창적 사유를 형성했다.
들뢰즈의 철학은 고정된 정체성과 위계적 구조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들을 제공한다. 그의 사상은 오늘날 철학뿐만 아니라 예술, 정치, 과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창조적 사유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가 남긴 사유의 지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지의 영토를 탐험할 수 있는 용기와 도구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