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감정을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화가 날 때, 그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정동이론(affect theory)은 이런 상식을 뒤흔든다. 감정보다 먼저 몸에서 일어나는 '정동'이 있고, 이것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정동이론은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수많은 순간들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는 렌즈다.
정동과 감정, 무엇이 다른가
정동(affect)과 감정(emotion)은 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감정은 우리가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화가 난다", "오늘 기분이 좋다"처럼 말이다. 반면 정동은 의식적 인식보다 먼저 몸에서 일어나는 강도(intensity)의 변화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췄을 때를 생각해보자. 그 순간 우리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되고, 호흡이 짧아진다. 이것이 정동이다. 그 다음에야 "아, 무섭다" 또는 "당황스럽다"는 감정이 뒤따른다. 정동은 언어나 의식보다 빠르게 작동하는 몸의 반응이며, 이후 감정과 사고로 전환된다.
정동이론의 대표적 철학자 브라이언 마수미는 정동을 몸의 '변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몸이 다른 몸들과 만나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그 강도와 잠재력이 바로 정동이다. 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모든 존재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킨다는 사상에 기반한다.
일상 속에서 작동하는 정동의 힘
정동은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 작동한다. 아침에 커피숍에 들어서는 순간, 원두 향과 따뜻한 조명, 잔잔한 음악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의식적으로 "이 공간이 좋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미 몸이 이완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이 정동의 작용이다.
반대로 지하철 러시아워의 복잡함 속에서 우리 몸은 긴장한다. 다른 사람들의 몸과 부딪히고, 소음과 냄새에 노출되면서 몸의 강도가 변화한다. "짜증난다"는 감정이 생기기 전에 이미 몸은 스트레스 상태에 들어선 것이다.
현대 정동이론가인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이런 몸의 반응을 '강도의 변화'라고 불렀다. 몸은 끊임없이 다른 몸들과 만나면서 기쁨과 슬픔, 활력과 피로 사이를 오간다. 이런 변화가 축적되어 우리의 기분과 에너지 상태를 결정한다.
SNS와 정동의 정치학
정동이론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현대 디지털 미디어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게시물을 공유하는 행위들은 모두 정동적 반응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누군가의 여행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부러움이나 동경의 정동을 경험한다. "부럽다"는 감정을 인식하기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한 것이다. 이런 정동적 반응들이 축적되어 우리의 욕망과 행동 패턴을 형성한다.
정동이론가들은 이를 '정동의 정치학'이라고 부른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의 정동을 관리하고 조작한다. 광고는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기 전에 먼저 몸의 정동적 반응을 유발한다. 화려한 색상, 리듬감 있는 음악, 매력적인 이미지들이 의식적 판단보다 먼저 몸을 자극한다.
정동이론이 제시하는 새로운 윤리학
정동이론은 단순히 몸의 반응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윤리학을 제시한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우리는 다른 존재들과의 만남에서 기쁨을 증대시키고 슬픔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도덕과는 다른 접근이다. 선악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만남과 상황에서 우리와 타인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회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정동 윤리학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참여자들의 에너지와 창의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난과 압박보다는 격려와 협력을 통해 모두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정동이론은 우리에게 몸의 지혜에 귀 기울이라고 말한다. 의식적 판단이나 사회적 규범보다 먼저,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섬세하게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 더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감정을 억압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를 넘어서, 몸과 마음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