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좋아요' 버튼을 누를까?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무의식적으로 하트 모양을 터치하는 이 작은 행위가, 사실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욕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SNS의 좋아요는 단순한 디지털 기능이 아니라,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드러내는 철학적 현상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구성되는 자아
좋아요를 누르고 받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게시물을 올리고 반응을 기다리는 순간, 이미 우리의 자아는 타인의 인정을 통해 완성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는 헤겔이 말한 '인정투쟁'의 디지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카페에서 찍은 라떼 사진에 달린 좋아요 50개가 그 커피의 맛을 바꾸지는 않지만, 우리에게는 그 숫자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좋아요는 단순한 호감의 표시가 아니라, '너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아요를 통해 타인의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동시에 좋아요를 누름으로써 타인의 존재를 인정해준다.
진정성과 연출 사이의 딜레마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흥미로운 모순에 직면한다. 좋아요를 받기 위해 우리는 자신을 연출하게 되고, 이 연출된 자아가 점차 '진짜' 자아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먼저 사진을 찍고, 여행을 갈 때 인스타그램에 올릴 장소를 먼저 생각한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나를 사물로 만든다'고 했는데, SNS에서는 이것이 역설적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사물화시켜 타인의 시선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정한 자아와 연출된 자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소통의 착각과 고립의 심화
좋아요는 소통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더욱 고립되어 간다. 좋아요는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반응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소통을 대체해버린다. "좋아요 하나면 충분해, 댓글은 귀찮아"라는 마음가짐이 일반화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얕은 관계에 만족하게 된다.
이는 볼링 혼자 치기(Bowling Alone) 현상의 디지털 버전이다. 물리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외로워지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좋아요 숫자가 높을수록 인기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정작 그 사람이 진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
그렇다고 해서 SNS의 좋아요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좋아요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관계와 공감의 방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멀리 떨어진 친구의 근황을 확인하고 작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 소외된 목소리에 지지를 보내는 것 등 긍정적인 측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좋아요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도, 전면적인 거부도 아닌 성찰적 거리두기다. 우리는 좋아요를 누르고 받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지만, 그것에만 의존해서는 진정한 자아를 잃을 수 있다.
좋아요는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 작은 버튼 하나에 인간의 인정욕구, 소통의 갈망, 존재의 불안이 모두 담겨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실존 조건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