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어에서 '뮈토스(mythos)'와 '로고스(logos)'라는 두 단어는 단순한 어휘를 넘어 서양 문명의 사고방식을 결정지은 근본적인 개념들이다. 이 두 단어의 대립과 변화는 신화적 사고에서 이성적 사고로의 전환, 즉 서양 철학과 과학의 탄생을 의미한다.
'뮈토스'는 원래 '말하다', '이야기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뮈테인(mythein)'에서 파생된 명사로, 초기에는 단순히 '이야기' 또는 '말'을 뜻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뮈토스는 영웅들이 하는 중요한 발언이나 연설을 가리켰다. 당시 뮈토스는 거짓말이나 허구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권위 있고 의미 있는 말을 뜻했다.
반면 '로고스'는 '레게인(legein)'이라는 동사에서 나온 말로, '모으다', '선택하다', '계산하다', '말하다'라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로고스를 우주의 합리적 원리로 사용하면서부터 이 단어는 '이성', '논리', '원리'라는 철학적 의미를 획득했다.
철학의 탄생과 mythos의 몰락
기원전 6세기경 밀레토스 학파의 탈레스가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했을 때, 이는 단순한 명제가 아니라 사고의 혁명이었다. 탈레스는 더 이상 "포세이돈이 바다를 다스린다"는 신화적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자연 현상의 합리적 원인을 찾으려 했다. 이것이 바로 뮈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전환점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한발 더 나아가 '아페이론(apeiron)', 즉 '무한한 것'을 만물의 근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구체적인 물질이 아닌 추상적 원리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신화에서는 카오스나 가이아 같은 인격적 존재들이 세계의 시작을 설명했지만, 철학자들은 비인격적이고 합리적인 원리를 추구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를 우주의 합리적 법칙으로 정의하면서 이런 변화를 완성했다. 그에게 로고스는 "모든 것은 하나이고 하나는 모든 것이다"라는 대립과 조화의 원리였다. 불과 물이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듯, 우주 전체가 로고스라는 합리적 원리에 따라 운행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결정적 분리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들을 이상국가에서 추방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는 뮈토스와 로고스의 결정적 분리를 의미했다. 플라톤은 시인들이 만드는 신화나 이야기들을 '미메시스(mimesis)', 즉 모방의 모방이라고 비판했다. 진정한 실재인 이데아의 그림자인 현실 세계를 다시 모방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예술은 진리에서 두 번 떨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플라톤 자신도 『파이드로스』의 날개 달린 마차 비유나 『국가』의 동굴 비유 같은 신화적 서술을 즐겨 사용했다. 이는 추상적인 철학적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때로 신화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신화들은 전통적인 뮈토스와 달리 철학적 로고스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한발 더 나아가 뮈토스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했다. 그는 뮈토스를 '플롯(plot)'이라는 문학적 개념으로 재정의하면서, 시(詩)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개별적 사실을 다루지만, 시는 보편적 가능성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뮈토스는 완전히 추방당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확보했다.
기독교 신학에서의 재편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세계에 전파되면서 뮈토스와 로고스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요한복음의 첫 구절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다"는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 개념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한 것이다. 여기서 로고스는 단순한 이성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신적 원리가 되었다.
교부 철학자들은 그리스 신화들을 '허위한 뮈토스'로 비판하면서도, 성경의 이야기들은 '참된 로고스'라고 주장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이교도들의 신화를 체계적으로 비판하면서도, 기독교의 창조 신화나 구원 이야기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옹호했다. 이는 진실한 뮈토스와 거짓된 뮈토스를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기독교 신학과 종합하면서 이성(로고스)과 신앙(피스티스) 사이의 조화를 추구했다. 그의 『신학대전』은 철학적 논증과 성경적 권위를 결합시킨 거대한 체계였다. 여기서 뮈토스는 계시의 형태로 새롭게 정당화되었다.
근세 철학의 이성 숭배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러 로고스는 절대적 지위를 획득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는 의심할 수 없는 이성적 확실성을 추구하는 근세 철학의 출발점이었다. 모든 전통과 권위, 그리고 신화적 사고를 의심의 대상으로 삼고, 오직 이성만이 확실한 지식의 원천이라고 본 것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기하학적 방법을 철학에 도입했다. 공리와 정의에서 출발해 논리적 추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은 신화적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했다. 신조차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합리적 체계의 일부로 파악되었다.
볼프는 이런 경향을 극단화해서 철학을 완전히 수학적 체계로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의 『독일어 형이상학』은 개념의 정의와 논리적 추론만으로 현실을 설명하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여기서 뮈토스는 미신이나 무지의 산물로 완전히 배제되었다.
낭만주의의 반격
19세기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의 이성 숭배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셸링은 『예술철학』에서 신화를 "절대자의 감성적 표현"이라고 재정의했다. 추상적 개념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가 신화라는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슐레겔은 『고대시 연구』에서 그리스 신화의 예술적 가치를 재발견했다. 그는 신화가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창조적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성적 분석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인간 경험의 총체성이 신화를 통해 표현된다고 본 것이다.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예술의 역사를 상징적 예술, 고전적 예술, 낭만적 예술의 3단계로 구분했다. 그리스 신화로 대표되는 고전적 예술은 이념과 감성적 형태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단계였다. 비록 종교와 철학에 비해 낮은 단계이지만, 예술만이 가진 고유한 진리 표현 방식이 있다고 인정했다.
니체의 혁명적 전환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문화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그리스 문화의 본질을 소크라테스적 이성주의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적 예술 충동에서 찾았다. 아폴론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도취가 결합된 그리스 비극이야말로 최고의 예술 형태라고 주장했다.
니체에게 소크라테스의 등장은 그리스 문화의 쇠퇴를 의미했다. "검토받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명제는 직관적이고 예술적인 삶의 방식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성이 삶을 재단하기 시작하면서 생명력이 약화되고 허무주의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더 나아가 진리 자체의 가치를 의문시했다. "진리를 향한 의지" 자체가 하나의 믿음이며, 때로는 "아름다운 허상"이 "추악한 진실"보다 더 가치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의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혁명적 사고였다.
20세기 구조주의와 뮈토스의 부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인류학』에서 신화를 미개한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보편적 구조를 드러내는 체계로 재평가했다. 신화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과학적 사고와 다르지만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
엘리아데는 『영원회귀의 신화』에서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을 구분했다. 신화적 시간은 순환적이고 원형적인 반면, 역사적 시간은 직선적이고 진보적이다. 현대인이 겪는 소외와 불안은 신화적 시간감각을 상실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융은 집단무의식 이론을 통해 신화의 현대적 의미를 발굴했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은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원형적 패턴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아니마-아니무스 같은 개념들은 고대 신화가 현대 심리학에서 되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현대 철학에서의 종합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로고스를 "현상을 드러내게 하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그에게 로고스는 계산하고 추론하는 이성이 아니라 존재를 열어 보이는 근원적 능력이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초적 로고스 개념으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이해의 해석학적 구조를 밝히면서 전통과 권위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했다. 신화나 전통은 극복해야 할 미신이 아니라 이해의 지평을 형성하는 필수적 요소라고 보았다. 과학적 방법만으로는 인간 경험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리쾨르는 『상징의 해석학』에서 신화와 상징의 철학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탐구했다. 신화는 개념적 사고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근본 상황을 드러내는 독특한 언어라고 주장했다. 악과 고통, 죄와 구원 같은 한계 상황들은 신화적 언어를 통해서만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mythos와 logos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이해되고 있다. 과학 기술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성 회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화와 상징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환경 위기와 생명 윤리 같은 현대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이성과 함께 신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