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월 어느 추운 밤, 런던 소호 지구의 한 허름한 하숙집. 촛불 하나만이 어둠을 밝히는 가운데, 30세의 독일인 망명객 칼 마르크스가 책상 앞에 앉아 있다. 그의 옆에는 28세의 절친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서 있고, 두 사람은 곧 세상을 뒤흔들 한 권의 작은 책자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펜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앞에는 며칠째 고쳐 쓰고 있는 원고가 놓여 있었다. 제목은 "공산당 선언"이었다.
"엥겔스, 이 한 줄로 시작해야 할까?" 마르크스가 원고의 첫 문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에는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적혀 있었다.
엥겔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해. 지금 유럽 전체가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지 않나. 프랑스에서는 루이 필리프 왕정이 흔들리고 있고, 독일에서도 민주주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어."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건 단순한 정치적 변화가 아니야." 마르크스는 일어나서 창문 너머 런던의 밤을 바라보았다. 공장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고 있었다. "저 공장들을 봐.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봐. 이건 계급 간의 전쟁이야."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하고 있어." 엥겔스가 맞장구쳤다. "내가 맨체스터 공장에서 직접 본 것들... 아이들이 방적기 아래 기어들어가 솜뭉치를 줍고, 여성들이 임신한 채로도 14시간씩 서서 일하는 모습 말이야."
마르크스는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해. 사유재산의 철폐, 생산수단의 공유, 계급 없는 사회..."
"하지만 칼,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엥겔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사유재산을 없앤다는 건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
마르크스는 펜을 다시 들었다. "역사를 봐. 봉건제도도 영원할 것 같았지만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줬어. 지금의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야.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건 변화 자체뿐이야."
그는 원고에 새로운 문장을 써내려갔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이 문장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엥겔스가 감탄했다. "노예와 노예주, 농노와 영주, 그리고 지금의 노동자와 자본가까지."
"맞아. 그리고 이 투쟁은 결국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날 거야." 마르크스의 눈이 반짝였다. "자본주의는 스스로 무덤을 팠어. 기계화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고,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수의 대자본가만 살아남게 돼. 결국 극소수의 부자와 절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로 나뉠 거야."
엥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때가 바로 혁명의 순간이겠군. 절대다수가 극소수를 압도하는."
"그래. 그리고 그 혁명은 단순히 권력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생산관계 자체를 바꾸는 거야." 마르크스가 열정적으로 말했다. "개인이 생산수단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사회.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사회 말이야."
두 사람은 밤늦도록 원고를 다듬어갔다. 그들은 이 작은 팸플릿이 100년 뒤 러시아 혁명을 일으키고, 중국과 쿠바에서 혁명의 깃발이 될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또한 20세기 내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둘로 나눌 것이라는 것도.
"마지막 문장은 어떻게 마무리할까?" 엥겔스가 물었다.
마르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힘차게 썼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완벽해." 엥겔스가 박수를 쳤다. "이제 이 선언문을 세상에 내보내자."
그들이 완성한 46페이지의 작은 책자는 며칠 뒤 런던의 한 독일인 인쇄소에서 출간되었다. 초판은 겨우 1,000부였지만, 이 책은 곧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 번역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날 밤, 자신들이 단순히 하나의 정치적 팸플릿을 쓴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사상적 폭탄을 만들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그들의 펜끝에서 나온 문장들은 앞으로 15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불꽃을 일으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