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중심 없는 사유, 기원 없는 사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차연의 놀이입니다.'
(이 글은 1966년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열린 "비평 언어와 인문과학"이라는 구조주의 학술대회를 배경으로 한다. 데리다가 발표한 "인문과학 담론에서의 구조, 기호, 놀이"는 서구 철학의 근본적인 지각변동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의 젊은 철학자가 구조주의를 넘어 탈구조주의로 향하는 전환점을 만드는 순간의 내적 긴장감과 지적 도전이 글의 바탕에 깔려있다. 서구 형이상학의 해체와 중심의 부재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미국 학계에 소개되던 순간의 긴장감을 재현한다.)
지독한 비행기 소음이 여전히 자크 데리다의 귓가에 맴돌았다. 파리에서 볼티모어까지의 긴 여정은 그를 지치게 했지만, 머릿속의 생각들은 여전히 선명했다. 호텔 방에 들어선 데리다는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발표문을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는 중심을 찾는 역사였다." 그는 첫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로고스, 신, 인간, 의식... 이들은 모두 구조의 중심이자 기원으로 여겨져 왔다."
창밖으로 볼티모어의 가을 저녁이 스며들고 있었다. 데리다는 내일 있을 발표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프랑스 구조주의를 미국에 소개하는 역사적인 자리였다. 롤랑 바르트, 자크 라캉, 츠베탕 토도로프 등 프랑스 지성계의 거장들이 모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내가 발표할 내용은 사실상 구조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 아닌가." 데리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펜을 들어 원고의 여백에 몇 가지 메모를 추가했다. "중심의 해체, 기원의 부재, 차연의 놀이..."
다음 날 아침, 강연장에 들어서자 수백 명의 청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캉, 바르트와 같은 거장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국 학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36세의 젊은 철학자, 데리다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중심은 중심이 아니다." 그는 발표를 시작했다.
청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일부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일부는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데리다는 잠시 멈춘 후 계속했다.
"서구 사상의 역사 전체는 기호의 개념에 의해 지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기호는 항상 현전의 형이상학 안에 갇혀 있었죠. 기표와 기의, 감각적인 것과 이해 가능한 것의 이분법..."
그는 잠시 멈추어 청중들의 반응을 살폈다. 라캉이 안경을 고쳐 쓰며 집중하는 모습이 보였다.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그들은 이미 이 현전의 형이상학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것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이 형이상학에 묶여 있기 때문이죠."
데리다는 원고에서 잠시 눈을 들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중심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조를 조직하지만, 구조에 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파라독스이자 모순입니다. 중심은 중심이 아닙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을 예로 들었다. 자연/문화의 이분법, 근친상간 금기의 보편성... 이 모든 것은 결국 스스로를 해체하는 모순을 품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우리는 이제 중심 없는 사유, 기원 없는 사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차연의 놀이입니다."
청중들 중 일부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차연'이라는 단어는 발음할 때는 '차이'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철자는 달랐다. 능동태와 수동태 사이, 현재와 지연된 것 사이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리다의 신조어였다.
"언어는 차이들의 체계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들은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미끄러집니다. 의미는 항상 지연되고, 유예되고, 다른 기표로 대체됩니다."
라캉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데리다의 주장이 자신의 '기표의 미끄러짐' 개념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형이상학의 탈구축, 즉 해체는 형이상학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형이상학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해체할 수 있을 뿐입니다. 마치 엔지니어가 아닌 손재주 있는 사람처럼요."
데리다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원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놀이를 긍정하는 해석입니다. 니체적인 긍정, 기쁨에 찬 긍정이 필요합니다."
발표가 끝나자 강당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 그리고 갑자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청중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대부분은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질의응답 시간, 한 미국 교수가 손을 들었다.
"데리다 교수님, 당신의 사유는 사실상 서구 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것 아닌가요?"
데리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서구 철학은 항상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었습니다. 진리와 거짓, 본질과 현상, 정신과 물질... 이런 이분법을 넘어서는 사유가 필요합니다. 해체는 파괴가 아니라 재구성입니다."
또 다른 교수가 질문했다.
"그렇다면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씀인가요? 모든 것이 차연의 놀이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윤리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데리다는 고개를 저었다.
"진리가 없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진리는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끊임없는 운동 속에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윤리적 판단은 여전히 가능합니다. 오히려 더 책임감 있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정해진 규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결정해야 하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 질문이 이어졌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차연'이라는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데리다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차연은 개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개념적 대립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입니다. 차이와 지연을 동시에 의미하죠. 예를 들어, '나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돌'이나 '물'과 다르다는 차이에서 나옵니다. 동시에 그 의미는 결코 완전히 현재화되지 않고 항상 지연됩니다. 다른 맥락에서 '나무'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네 번째 질문자가 일어났다.
"그럼 텍스트의 의미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입니까? 작가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은 건가요?"
"작가의 의도는 하나의 해석일 뿐입니다." 데리다가 대답했다. "텍스트는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독립적인 생명을 얻습니다. 독자는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는 것입니다. 모든 읽기는 쓰기이고, 모든 해석은 새로운 텍스트의 창조입니다."
발표회가 끝난 후, 데리다는 라캉과 바르트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흥미로운 발표였소." 라캉이 말했다. "당신은 구조주의를 넘어서고 있군요. 당신의 '차연' 개념은 제가 말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습니다. 욕망도 결코 충족되지 않고 끊임없이 대상을 바꾸어가니까요."
바르트도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구조주의의 절정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을 때, 당신은 이미 그것을 해체하고 있었군요. '작가의 죽음'에 대한 제 생각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날 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데리다는 창가에 서서 볼티모어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의 발표가 미국 학계에 던진 파문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사상은 이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텍스트 외부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중얼거렸다. "모든 것은 텍스트이고,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책상에 앉아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해체는 일어난다. 그것은 이론도, 방법론도 아니다. 그것은 일어나는 것이다."
호텔 방의 조용한 정적 속에서, 데리다의 펜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마치 차연의 놀이처럼, 그의 사상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있었다. 서구 철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며칠 후, 데리다는 파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볼티모어에 남아 깊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몇 년 후 예일 대학교를 중심으로 '해체주의' 비평이 꽃피기 시작했고, 폴 드 만, 제프리 하트먼, J. 힐리스 밀러와 같은 비평가들이 데리다의 사상을 미국 문학 비평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리다 자신은 자신의 사상이 '해체주의'라는 하나의 학파나 방법론으로 고정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해체는 학파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정된 방법도 아니고요. 해체는 끊임없는 운동이며, 모든 고정된 의미, 모든 중심화된 구조에 대한 질문입니다."
데리다의 발표로부터 시작된 사유의 흔적은 이제 철학, 문학비평, 건축, 심지어 법학에까지 퍼져나갔다. 중심 없는 구조, 작가의 죽음, 텍스트의 상호연관성... 이 모든 개념들은 20세기 후반의 지적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데리다는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적, 윤리적 문제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하고, 핵무기 확산을 비판하고, 이민자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게 해체는 단순히 텍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문제이기도 했다.
"해체는 정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정의는 법과 다릅니다. 법은 계산 가능하지만 정의는 계산 불가능합니다. 정의는 항상 도래할 것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볼티모어의 그 날, 데리다가 처음으로 '차연'의 개념을 미국 청중들에게 소개했던 그 순간은, 서구 사상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학술 발표가 아니라, 사유의 지평을 바꾸는 사건이었다.
데리다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했던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우리는 이제 중심 없는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원의 상실을 슬퍼하는 대신, 해석의 놀이를 긍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저녁 제가 당신들과 나누고 싶었던 생각입니다."
강당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박수 소리의 울림은, 마치 차연의 놀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해체는 끝나지 않는 과정이었고, 차연은 여전히 춤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