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정당할수록 나는 더 죄인이다." 홀로코스트를 생존한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역설적 선언이다. 가스실 앞에서 죽음과 삶 사이를 넘나든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복수에 나선 이들을 막으며 "독일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이라 고백했다. 폭력의 한복판에서 희생자였던 그가 왜 무한한 책임을 말하는가. 윤리학을 제일철학의 자리에 둔 그의 사상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이 강의는 레비나스의 대표작 『시간과 타자』를 정독하며 그의 윤리철학에 다가간다.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후설과 하이데거를 공부하고, 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를 경험한 레비나스. 그의 삶은 러시아, 독일, 프랑스, 유대 문화라는 네 가지 정체성 속에서 펼쳐졌다. 이 디아스포라적 경험이 그로 하여금 '타자'에 대한 물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연세대 박남희 교수가 레비나스의 난해한 텍스트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윤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 강의특징
이 강의의 가장 큰 특징은 하이데거와의 대결을 통해 레비나스 사상의 독창성을 부각한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가장 고유한 가능성으로 보았지만, 레비나스는 죽음을 타자성의 극한이라 본다. 하이데거의 죽음은 현실에서 경험되지 않은 추상이지만, 레비나스의 죽음은 수용소에서 직접 마주한 구체적 현실이다. 하이데거의 전체성을 향한 존재론을 레비나스는 전체주의적이라 비판하며, 존재론보다 윤리학을 앞세운다.
8강 48교시 구성은 주체의 문제에서 시작해 존재, 고독, 관계, 몸, 사랑과 타자성, 고통과 죽음,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 맺기로 이어진다. 각 강의는 레비나스의 핵심 개념들-존재와 존재자의 구분, 익명적 존재의 웅웅거림(il y a), 얼굴의 현현, 에로스와 여성성, 무한책임-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특히 '얼굴'이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얼굴이란 생김새가 아니라 타자가 하는 소리에 귀를 여는 것이다. 내 안을 나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듣는 것, 그것이 얼굴을 마주한다는 의미다.
강의는 원문을 천천히 읽으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난해한 철학 용어를 일상의 비유로 풀어주고, 문학작품과 영화를 예시로 들어 이해를 돕는다. 유대교적 사유 전통, 탈무드와 토라의 배경 설명도 레비나스 이해에 필수적이다.
■ 추천대상
현상학과 실존철학에 관심 있는 사람, 하이데거를 공부했거나 공부하는 중인 사람에게 적합하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 비판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하므로, 『존재와 시간』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으면 강의를 훨씬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다. 윤리학을 전공하거나 현대 윤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탐구하려는 대학원생에게도 유익하다.
철학 전공자가 아니어도 타자와의 관계, 책임의 문제, 일상 속 윤리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상실과 슬픔을 경험한 사람에게 레비나스의 철학은 위로가 된다. 죽음과 타자성에 대한 그의 사유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삶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후설의 현상학이나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다면 초반 강의가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현상학 입문서를 먼저 읽거나,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넘어가고 전체 흐름을 따라가며 나중에 다시 돌아오는 방법을 권한다.
■ 수강팁
『시간과 타자』 번역본을 구입하여 강의와 함께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강의에서 원문을 인용할 때마다 책에 표시해두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 이해가 깊어진다. 강의록도 잘 정리되어 있어 복습에 유용하다. 중요한 개념이 나올 때마다 강의를 멈추고 노트에 정리하자. 존재와 존재자, 일리야, 얼굴, 무한책임 같은 핵심 용어는 반복해서 나오므로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강의 속도는 적당하지만, 한 번에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말자. 레비나스의 사유는 기존 서양철학의 전제를 뒤집는 것이므로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2회 이상 반복 수강을 권한다. 첫 수강에서는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두 번째 들을 때 세부 내용을 정리하면 좋다.
6강 사랑과 타자성, 7강 고통과 죽음 부분은 특히 여러 번 들을 가치가 있다. 에로스를 통한 타자성의 경험, 죽음 앞에서의 무능력, 이런 주제들은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이자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어려운 레비나스를 친근하게 만났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원에서 원전으로 배울 때는 너무 난해했는데, 이 강의로 중요한 부분을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다. 박남희 교수의 "상냥하고 자상한 강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대한 찬사가 이어진다. "문학강좌를 듣는 듯한 따뜻한 언어"라는 표현도 있다.
"일상 속에 실천할 수 있는 철학"이라는 평가가 인상적이다. 한 수강생은 아버지를 여의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 이 강의를 들으며 위로받았다고 고백한다. "타자의 얼굴 앞에서 울컥했다"는 후기, "내 책임이다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와 가슴을 때렸다"는 반응은 레비나스 철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힘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윤리학 전공자들의 평가도 높다. "존재론보다 윤리학이 제일철학이라는 명제가 왜 혁명적인지 알게 됐다", "책임의 비대칭성 개념을 이해하게 됐다"는 후기들이다. 다만 현상학 기초가 없으면 초반이 버거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마치며
레비나스는 타자란 주체가 함부로 다스리거나 자기 생각 속으로 끌고 올 수 없는 '영원한 타자'라고 본다. 나와 다른 존재를 나의 틀 안으로 환원하려는 서양 철학 전통의 폭력성을 그는 비판한다.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타자의 소리에 귀를 여는 것이며, 그 순간 무한한 책임이 시작된다. 이것이 가스실 앞에서 죽음을 경험한 철학자가 전하는 메시지다. 지금 이 시대, 소외자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사회에서 레비나스의 윤리철학은 더욱 절실하다. 타자의 얼굴 앞에 서는 8주간의 여정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