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프로이트를 계승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오랫동안 남근중심주의, 즉 남성 중심적 이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페미니스트들은 라캉이 결국 가부장제를 정당화하는 이론가에 불과하다고 공격했고, 라캉과 페미니즘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 통념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라캉의 이론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고, 여성적 욕망의 해방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는 없을까?
이 강좌는 바로 그 위험하지만 흥미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라캉 정신분석의 최고 전문가 백상현이 라캉 이론의 핵심을 재해석하면서, 그 안에 숨어있던 여성주의적 태도를 끄집어낸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단순히 증상을 치료하는 의학적 실천이 아니라, 가부장적 상징계 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키는 정치적 실천이었다. 상징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남성적이지만, 바로 그 언어에 포섭되지 않는 '공백', 그 틈새야말로 여성적 욕망이 자리할 공간이다.
전체 8강에 걸쳐 이 강좌는 라캉의 주요 개념들—히스테리, 증상, 실재계, 대상 a, 주이상스(향유), 응시 등—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프로이트와 달리 라캉은 히스테리를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 주체화의 여정으로 보았고, 증상을 소멸시키는 대신 '무대화'시켰다. 이는 가부장적 질서에 균열을 내고, 그 균열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해낼 가능성을 열어준다. 라캉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여성들이 남성적 언어에 포섭되지 않고, 스스로의 욕망을 긍정하고 향유하는 것이다.
백상현은 이 과정을 '영광스러운 타락'이라고 부른다. 정신분석에서 타락은 기존 질서로부터의 이탈이며, 변화를 이끄는 시발점이다. 여성이 타락을 욕망의 장소로 변화시킬 때, 그곳에서 새로운 윤리가 탄생한다. 라캉과 페미니즘의 연대, 그 급진적 가능성을 탐험하는 여정에 초대한다.
■ 강의특징
이 강좌의 가장 큰 특징은 라캉 이론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이다. 백상현은 라캉을 단순히 소개하거나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라캉 텍스트 속에서 페미니즘과 연대할 수 있는 지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때로는 라캉 자신도 충분히 전개하지 못했던 함의들을 끌어낸다. 이는 일종의 '증상적 독해'라고 할 수 있다. 라캉 이론 속의 균열과 공백을 파고들어, 그곳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둘째, 강의는 철학적 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인 예술 작품과 문화 현상을 적극 활용한다. 요셉 보이스의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모자상,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 키키 스미스의 작품 등을 분석하면서 라캉의 개념들—응시, 의태, 승화, 주이상스—을 설명한다. 추상적인 정신분석 이론이 예술작품을 통해 가시화되고, 우리의 일상적 경험과 연결된다.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시선의 정치학,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타자의 언어에 '문신당하는지', SNS 시대의 의태(흉내내기)와 같은 비근한 예들이 라캉 이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셋째, 강의는 종교와 예술의 구조를 정신분석적으로 해부한다. 왜 신은 남성인가? 종교의 가부장적 특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애도로서의 종교, 강박증적 구조로서의 종교, 응시의 장치로서의 종교를 분석하면서, 라캉 이론이 단지 개인의 무의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문명과 문화 전체의 구조를 꿰뚫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예술 역시 히스테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예술이야말로 상징계 질서에 균열을 내고 실재에 접근하는 특권적 방식이다.
넷째, 강의는 실천적 윤리를 강조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치료(cure)가 아니라 실천(practice)이다. 분석가는 내담자를 가족 관계나 사회 질서 속으로 재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로부터 '미끄러지게' 만든다. 존재 안의 공백을 선물하고, 내담자가 그 공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갈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분석가의 역할이다. 이는 분석가와 내담자가 함께 수행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다.
마지막으로, 백상현의 강의는 난해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라캉의 개념들—상징계, 실재계, 상상계, 대타자, 대상 a, 주이상스, 환상의 횡단 등—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백상현은 이 개념들을 단계적으로 풀어가며, 반복과 변주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간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라캉적 사유의 궤도에 진입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추천대상
이 강좌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한다. 특히 기존의 페미니즘 이론들에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정신분석학적 접근은 낯선 이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것이다. 라캉과 페미니즘이 양립할 수 없다는 통념을 뒤집고, 오히려 라캉 이론 속에서 여성 해방의 급진적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좋은 입문이 된다. 백상현은 국내 최고의 라캉 전문가로,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라캉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수의 라캉 관련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강의는 라캉 세미나의 핵심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다루면서도, 단순한 개념 해설에 그치지 않고 라캉 이론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한다. 라캉의 『세미나 7: 정신분석의 윤리』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다른 세미나들의 내용을 종횡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라캉 사유의 전체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
예술과 문화를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유익하다. 회화, 조각,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작품들이 라캉 이론의 렌즈를 통해 새롭게 읽힌다. 예술이 어떻게 무의식의 구조를 드러내는지, 예술 작품이 어떻게 관람자를 응시하고 변화시키는지, 예술의 승화 기능은 무엇인지 등을 탐구한다. 예술비평, 미술사, 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라캉은 강력한 분석 도구가 될 것이다.
상담이나 심리치료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게도 권한다. 다만 이 강좌는 라캉학파의 관점에서 정신분석을 다루기 때문에, 인지행동치료나 약물치료 중심의 접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수강후기 중에는 약물치료에 대한 백상현의 비판적 언급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치료'가 아닌 '실천'으로서의 정신분석, 증상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체화의 계기로 삼는 태도는 임상 현장에 새로운 영감을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 철학과 비판이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한다. 라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푸코, 들뢰즈, 데리다, 지젝 등의 사상가들이 라캉과 대화하거나 논쟁했다. 라캉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 대륙철학의 절반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강좌는 라캉 정신분석을 현대 철학의 맥락 속에 위치시키면서, 그것이 가진 철학적, 정치적 함의를 탐구한다.
■ 수강팁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난해하기로 악명 높다. 처음 접하는 이들은 낯선 용어들의 홍수에 압도될 수 있다. 몇 가지 수강 팁을 제안한다.
첫째, 모든 것을 한 번에 이해하려고 하지 말자. 라캉의 개념들은 선형적으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심화된다. 같은 개념이 강의 전체에 걸쳐 반복되면서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조명된다. 처음에는 막연하게 느껴지던 개념들이 반복 학습을 통해 점차 명료해진다. 따라서 한 강을 듣고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일단 전체 강의를 끝까지 듣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핵심 개념들을 정리하면서 들으면 도움이 된다. 상징계, 실재계, 상상계의 삼분법, 대타자(Autre)와 대상 a의 구분, 주이상스(jouissance)와 쾌락(plaisir)의 차이, 환상(fantasme)의 구조 등 라캉의 기본 개념들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듣자. 강의 중에 백상현이 이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설명하므로, 처음에는 모호하게 이해되던 것들이 점차 명확해질 것이다. 강의록이 제공되므로 이를 활용해 복습하는 것도 좋다.
셋째, 라캉의 원전이나 2차 문헌을 병행해서 읽으면 이해가 깊어진다. 백상현의 저서인 『라깡의 인간학: 세미나 7의 강해』(위고, 2017)는 이 강좌와 직접 연결되는 책이므로 함께 읽으면 좋다. 라캉의 『세미나 7: 정신분석의 윤리』 원전도 도전해볼 만하다. 또한 브루스 핑크의 『라캉의 주체』(도서출판 b, 2010)나 딜런 에반스의 『라캉 정신분석 사전』(인간사랑, 1998) 같은 입문서들도 유용하다.
넷째, 강의에서 다루는 예술 작품들을 직접 찾아보자. 백상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한스 홀바인, 프라 안젤리코, 요셉 보이스, 키키 스미스 등의 작품을 분석하는데, 이 작품들의 이미지를 직접 검색해서 보면서 강의를 들으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 같은 사이트에서 고해상도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다섯째, 수강후기에서 드러나듯이 이 강좌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기본 개념(무의식, 억압, 쾌락원칙, 현실원칙,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불안 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면, 프로이트 입문서를 먼저 읽고 오는 것을 권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나 『꿈의 해석』 입문서, 또는 앤서니 스토의 『프로이트』(교양인, 2007) 같은 평이한 입문서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섯째, 온라인 강의의 장점을 활용하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반복해서 듣고, 필요하면 재생 속도를 조절하자. 특히 백상현의 목소리가 작거나 전달력이 아쉽다는 수강후기가 있었으므로,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사용해 집중해서 듣는 것이 좋다. 자막 기능이 있다면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이 강좌를 듣는 목적을 명확히 하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의 접점을 탐구하고 싶은가? 라캉 이론 자체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가? 예술 작품을 정신분석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가? 아니면 현대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인가? 목적에 따라 강의를 듣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특정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해당 강의를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듣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후기들은 이 강좌의 장점과 난점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먼저 긍정적인 반응들을 보자.
"정신분석학에서 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한가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언어, 즉 상징계의 언어가 남성적인 것이라면, 그 감염된 언어를 극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했습니다. 그 대안은 '타락'이었던 거군요. 결국 여성 해방이라는 것은 스스로의 욕망을 긍정하고 향유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었군요."
수강생들은 특히 '타락의 윤리'라는 개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이탈하는 것, 그것을 부정적인 '타락'이 아니라 긍정적인 '해방'으로 재해석하는 라캉의 관점이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이다. 한 수강생은 "주어진 것을 선용하라"는 고대 희랍의 격언을 떠올리며, 주어진 욕망을 긍정하고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윤리적 과제라고 정리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남근중심주의라는 비판을 자주 접했던 탓일까요? 처음에는 다소 의아한 생각으로 강의를 들었습니다. 백상현 선생님이 라캉을 접근하는 방식은 좀 더 급진적인 방식 혹은 오른쪽으로 굽은 막대를 펴기 위해 더 왼쪽으로 막대를 구부리는 방식의 독해로 이해했습니다."
이 후기는 백상현의 접근법의 특징을 잘 포착한다. 그는 라캉을 '중립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여성주의적 독해를 강화한다. 이는 라캉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균형을 잡으려면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에 반대편 무게를 더 많이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계 언어/남성적 언어에 포섭되지 못하는 그 공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말한 백상현 강사님의 해석이 매우 공감갔고요. 여성들이 여성들의 언어를 창조하는 게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는 백상현 선생님의 말도 매우 공감이 됩니다."
여러 수강생들이 '여성의 언어 창조'라는 주제에 공감했다. 기존의 남성적 언어로 여성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의 한계를 넘어서, 아예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과제라는 주장은 급진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 것이다.
반면 건설적 비판도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약물치료에 대한 백상현의 언급에 관한 우려다.
"백상현 강사님 여러 강의를 잘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만 이번 강의 1강에서, 강사님의 '약물 치료'에 대한 의견이 자칫 오해의 여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물의 오남용이 문제이지 약물치료 자체를 폄하하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내담자 복지에도 맞지 않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라캉학파의 정신분석은 약물치료나 인지행동치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취한다.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증상을 주체화의 계기로 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물치료가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부분에서 백상현의 언급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다는 지적은 경청할 만하다.
난이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입문자에게는 이 강의가 다소 어려울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개념과 라캉의 주요 용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해 보입니다."
실제로 이 강좌는 완전한 초보자를 위한 입문 강좌는 아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상태에서 들으면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수강생들이 반복 청취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갔다고 증언한다. 난해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전달력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때때로 교수님의 목소리가 작거나, 특정 용어를 반복할 때 집중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워낙 난해한 주제이기 때문에 전달력 부분이 조금 더 보완되면 청취자들이 내용을 흡수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는 온라인 강의의 기술적 문제일 수도 있고, 백상현 개인의 강의 스타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깊이와 풍부함이며, 전달의 기술적 측면은 이어폰 사용이나 재생 속도 조절 등으로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수강후기들은 이 강좌가 라캉 이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는 데 동의한다. 라캉과 페미니즘의 연대, 정신분석의 윤리적 차원, 예술과 종교의 정신분석적 해석 등 다양한 주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라캉 사유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는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는 것이다.
■ 마치며
라캉과 페미니즘의 만남은 위험한 모험이다. 자칫 라캉의 남근중심주의를 정당화하거나, 반대로 라캉 이론을 페미니즘의 도구로 환원시킬 위험이 있다. 하지만 백상현은 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전진한다. 그의 전략은 라캉 이론 속의 '공백'을 파고드는 것이다. 라캉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론 구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주의적 함의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 강좌의 핵심 메시지는 명료하다. 상징계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남성적이지만, 바로 그 언어에 포섭되지 않는 영역, 그 '공백'이야말로 여성적 욕망이 자리할 공간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이 공백을 소멸시키거나 메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고립시키고 보존한다. 분석가는 내담자에게 공백을 선물하고, 내담자는 그 공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채워나간다. 이것이 라캉학파 정신분석의 여성주의적 태도이며, 진정한 페미니즘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타락의 윤리'는 이 강좌의 백미다. 정신분석에서 타락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타락은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로부터의 이탈이며, 새로운 주체 탄생의 계기다. 여성이 스스로의 욕망을 긍정하고 향유할 때, 여성이 남성적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언어를 발명해낼 때, 그곳에서 영광스러운 타락이 일어난다. 이 타락은 변화를 이끌고 진정한 윤리를 여는 시발점이다.
물론 이 강좌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난이도가 높고, 전달력에 아쉬움이 있으며, 일부 주장(특히 약물치료에 대한 비판)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강좌는 라캉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만남이라는 도전적 기획을 설득력 있게 수행해낸다. 라캉을 공부하고 싶은 이들, 페미니즘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고 싶은 이들, 정신분석의 윤리적 차원을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강좌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백상현은 강의 말미에 라캉의 경구 "속는 자들이 방황한다"(Les non-dupes errent)를 언급한다. 이는 라캉의 말장난으로, "아버지의 이름들"(Les noms du père)과 발음이 같다. 상징계의 아버지-질서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지 않는 자들, 그 질서에 포섭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자들, 바로 그들이 히스테리적 주체들이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의 방황은 무능력의 표시가 아니라 저항의 표시다. 이들은 기꺼이 방황하며, 그 방황 속에서 새로운 주체성을 발명해낸다.
라캉과 함께 방황하는 여정,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모험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을 이 강좌로 초대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변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백상현은 말한다. "새롭게 시도되는 해석에서 그 해석에 참여했던 독자(혹은 주체)가 변화할 수 있다." 라캉을 읽는 것, 라캉과 함께 사유하는 것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자기 변화의 과정이다. 라캉의 정신분석과 여성적 욕망의 윤리학, 그 급진적 만남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