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2012년 프랑스 철학자 메이야수가 던진 상관주의 비판은 21세기 철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인간의 사유를 거치지 않고서도 사물은 실재한다"는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선언은 칸트 이래 200년 가까이 지속된 철학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그 파장 속에서 등장한 이들이 바로 그레이엄 하먼, 마르쿠스 가브리엘, 육후이다.
이 강좌는 실재론적 전회 이후 가장 주목받는 세 명의 철학자가 존재론의 새로운 지평을 어떻게 열어가고 있는지, 특히 그들의 철학적 사유가 미학과 예술론으로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탐구한다. 하먼의 객체지향철학, 가브리엘의 신실재론, 육후이의 디지털 대상 존재론이라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철학적 세계를 가로지르며, 우리는 예술과 미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과 만나게 된다.
■ 강의특징
이 강좌의 가장 큰 특징은 '대화'에 있다. 박성관, 김남시, 이승현 세 명의 강사는 각자 맡은 철학자를 설명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두 철학자를 불러들인다. 1강에서 하먼을 이야기하면서 가브리엘과 비교하고, 2강에서 가브리엘을 다루면서 메이야수와 하먼을 언급하는 식이다. 이런 구성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철학적 사유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철학은 독백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들 사이의 긴장과 공명 속에서 전진한다는 것을 이 강좌는 생생하게 증명한다.
또한 이 강좌는 추상적인 존재론이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모네의 그림 앞에서 의미장 개념을 설명하고, NFT 아트를 통해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을 논하며, 은유와 블랙홀의 비유로 객체의 실재를 탐구한다. 철학은 책상 위의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예술작품, 이미지, 디지털 세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참고문헌으로는 그레이엄 하먼의 『예술과 객체』(갈무리, 2022),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예술의 힘』(이비, 2022), 육후이의 『디지털적 대상의 존재에 대하여』(새물결, 2021)가 사용되었다.
■ 추천대상
첫째, 현대철학의 최전선이 궁금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객체지향존재론 같은 용어들이 낯설지만 흥미롭게 느껴진다면 이 강좌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다만 완전한 입문자보다는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과 인내심을 가진 학습자에게 더 적합하다.
둘째, 예술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싶은 이들에게 유용하다.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서면 늘 비슷한 방식으로만 감상하게 된다고 느끼는가? 이 강좌는 예술작품이 단순한 재현이나 표현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의 장을 여는 사건이며, 은폐된 실재와의 만남이고, 코스모테크닉스의 구현이라는 세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셋째, 디지털 시대를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싶은 이들에게 흥미로울 것이다. IT 업계 종사자나 디지털 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육후이의 디지털 대상 존재론이 특히 새로운 통찰을 줄 수 있다. NFT 아트, 네트워크 논리, 온톨로지 같은 개념들이 단순한 기술 용어가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과 직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수강팁
이 강좌를 효과적으로 수강하려면 몇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메이야수에 대한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상관주의 비판이 무엇인지, 왜 칸트 이후 철학이 문제가 되었는지에 대한 기본 이해가 있으면 강좌 전체의 맥락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만약 메이야수가 낯설다면 관련 입문서를 미리 읽어보거나, 1강을 두 번 듣는 것을 권한다.
둘째, 강의록을 적극 활용하라. 객체지향존재론의 사중구조, 의미장, 코스모테크닉스 같은 개념들은 한 번 듣고 이해하기 어렵다. 강의를 들으면서 강의록에 자신만의 메모를 추가하고, 핵심 용어들을 정리해두면 복습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셋째, 각 강의를 들은 후 해당 철학자의 책을 부분적으로라도 읽어보길 권한다. 강의만으로는 얻기 힘든 디테일과 논증의 흐름을 원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하먼의 『예술과 객체』나 가브리엘의 『예술의 힘』은 비교적 읽기 쉬운 편이다.
넷째, 너무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마라. 현재 진행형인 철학 논쟁이기에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고 개념들이 아직 정립되는 과정에 있다. 모든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기보다는 새로운 사유의 흐름을 느끼고, 질문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난이도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철학 입문자인데 생각보다 어렵네요"라는 솔직한 고백에서부터 "존재론의 경계를 확장하다"는 찬사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특히 많은 수강생들이 가브리엘 파트를 압권으로 꼽았다. 모네 그림 분석을 통해 의미장 개념을 설명하는 2강과 5강이 가장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깊은 통찰을 준다는 평가다. "예술작품이 단순히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장을 여는 거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는 반응이 대표적이다.
하먼의 쿼드러플 오브젝트 개념도 흥미롭다는 평이 많았다. "RQ-SQ 파열 이야기가 재밌었음. 실재 성질과 감각 성질 사이의 긴장이 은유를 만든다는 건데, 이걸 미학에 적용하니까 예술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생기더라"는 수강생의 말처럼, 하먼의 복잡한 이론이 예술 감상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다.
육후이는 생소한 철학자였지만 그만큼 신선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중국 철학자인 육후이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이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NFT 아트 사례도 시의적절했다"는 반응이나, IT 업계 종사자가 "평소 코딩하면서 막연히 느끼던 걸 철학적으로 설명해주는 느낌"이었다는 후기는 육후이 철학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합동강좌의 구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눈에 띈다. "세 명의 강사가 각자 맡은 철학자를 설명하면서도 다른 두 철학자를 계속 언급해주는 구성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세 철학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라는 후기는 이 강좌의 기획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음을 보여준다.
예술 전공자의 시각도 흥미롭다. "미대 졸업하고 작업하는 사람"이 "작품이 단순히 감상자와의 관계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체의 은폐된 실재를 가진다는 관점이 새로웠다"며 자신의 작업에 직접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것은 이 강좌가 이론과 실천을 연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난이도에 대한 경고도 많다. "메이야수부터 공부하세요"라는 조언이나 "입문용은 절대 아닙니다"라는 단언은 이 강좌를 선택하려는 이들이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 마치며
철학은 과거를 정리하는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사유다. 하먼, 가브리엘, 육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낡은 이분법을 해체하고, 사유의 프런티어를 확장하고 있다. 이들의 철학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흥미롭다. 우리는 철학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을 통해 철학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추상적인 존재론이 갤러리의 그림 앞에서, 디지털 스크린 위에서, 중국 산수화의 여백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고, 동시에 철학이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강좌는 쉽지 않다. 상관주의, 사중구조, 의미장, 코스모테크닉스 같은 낯선 언어들이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그 언어들을 천천히 익혀가는 과정 자체가 사유를 확장하는 경험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 세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되는 것이다.
10시간 31분의 여정을 마칠 때쯤, 당신은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설 때, 디지털 이미지를 마주할 때, 혹은 단순히 사물을 바라볼 때 예전과는 다른 질문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객체는 어떤 은폐된 실재를 가지고 있을까?" "이 작품은 어떤 의미장을 열고 있는가?" "이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적 위상은 무엇인가?" 그 질문들이야말로 이 강좌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철학의 최전선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세계를 다시 발견하고, 예술을 새롭게 만나고, 사유의 한계를 확장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그 여정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시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