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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학』에서 말하는 ‘시학’은 시에 관한 이론을 써 놓은 게 아니라 주로 드라마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시학의 비극이라는 것은 시의 범주 즉, 오늘날의 비평문학에 해당된다.
『시학』6장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한다.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 완결된 행동을 모방하며 쾌적한 장식을 가진 언어를 사용”한다. “비극은 드라마적 형식을 취하고 서술적 형식을 취하지 않으며 연민과 공포, 두려움을 환기시키는 사건에 의하여 바로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한다.”여기서 ‘비극’이라는 단어는‘시’라는 단어로 대치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즈음에서 한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도대체 ‘카타르시스가 뭐냐’ 또는 ‘미메시스가 뭐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비극적인 비극과 비극적이지 않는 비극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다. 비극을 보면서 반드시 눈물을 흘려야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극적으로 결말나지 않는 비극, 즉 ‘트레고디아’라는 것이 있다.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았는데도 연민과 두려움을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행하는 것이 바로 트레고디아인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새를 모방하여 춤을 추고 또는 새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노래를 만드는 등 자연의 대상을 모방해 예술작품을 창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다시 재현해 놓는 다는 개념으로 미메시스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춤이라는 것도 모방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이고, 흉내 낸다는 뜻에서부터 미메시스라는 말은 움직임과 소리, 심지어는 감정의 표현까지도 모방할 수 있다는 의미까지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의 앎이라고 하는 것은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형이상학 첫머리에 보면 “인간은 알려고 하는 본능적으로 인간은 알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어떤 앎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모방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아이들이 말을 배우는 것도 부모님 말을 모방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경험을 통해 또 점차적으로 인식의 단계까지 나가는 것, 그리고 그 중간에 이제 모방이 있는 것이다. 그 모방을 통해서 우리는 즐거움을 얻는데, 바로 모방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날 때부터 모방된 것에 대해서 어떤 즐거움,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김재홍(철학자, 정암학당 연구원, 관동대 연구교수)
숭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양고전철학을 전공하여 논문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방법론에서의 변증술의 역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고중세 철학 합동 프로그램’에서 철학 연구를 한 후, 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과 관동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