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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예술이 기술(technology)을 만날 때
새로운 미학의 탄생; 생성미학
생성미학이란 기호로 기능할 수 있는 어떤 물질적 요소들의 집합에 적용되어 의식적, 방법적으로 미적 상태(배치 내지 형상화)를 생성해낼 수 있는 조작, 규칙, 정리의 총체로 이해할 수 있다. 미적 종합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생성미학에는 분석미학이 앞서야 한다. 이 분석미학의 절차를 통해 미적 구조들은 그것의 담지체인 주어진 예술작품들로부터 나와 미적 정보로 분석되어야 한다. 이 분석된 미적 정보들이 물질적 요소들의 구체적인 집합 속에 계획적으로 투사되고 실현되려면, 추상적으로 기술 가능해야 한다.
생성미학체계의 효과적인 미적 구조는 오직 혁신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그리고 이 혁신이 확정된 현실이 아니라 개연적 현실을 보여주는 한에서만 정보를 갖기에, 정리(定理)와 프로그램을 통해 규범에서 벗어난 개연성들을 산출하는 게 생성미학과 그것의 기획의 중심적 모티브라고 말할 수 있다.
막스 벤제, 사변철학과 실재적 예술의 기막힌 만남
벤제의 중심적 주제는 미학과 합리성, 예술과 수학, 물리적 세계와 미적 세계의 결합이었다.
벤제는 자신의 미학을 ‘현대적(modern)’이라 부른다. 그가 말하는 ‘현대’란 예술과 미학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자연과학적 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는 미학에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주어, 미학을 다시 정초하는 것을 꿈꾼다. 미학을 ‘엄밀학’으로 만들려면, 예술작품을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대상 혹은 과정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 때문에 벤제는 “미적 대상에는 예술작품의 실재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벤제에 따르면, 이 공실재성을 파악하는 데에는 기호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기호로서 예술작품은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를 의미하는(bedeute) 기호세계로부터 실재인(ist) 기호세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의미하기’로부터 그 자체가 실재인 기호로의 이행은 추상예술을 분석할 수 있는 툴을 제시해 준다.
Tip 1. 막스 벤제(Max Bense, 1910~), 그는 누구인가?
독일의 철학자 · 미학자. 1946년 예나대학교, 1949년 슈투트가르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정보이론을 미학에 적용하여 이른바 과학미학의 한 경향을 대표한다.
Tip 2. 막스 벤제, 물리적 세계와 미적 세계의 결합
벤제의 중심적 주제는 미학과 합리성, 예술과 수학, 물리적 세계와 미적 세계의 결합이었다. “본질적으로 세계과정에는 서로 구별 가능한 두 가지 밖에 없는 듯하다. 물리적 과정과 미적 과정이 그것인데, 이 두 과정은 서로 변증법적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 변증법적 결합을 벤제는 기호학(처음에는 모리스, 후에는 퍼어스)의 도움으로 분석하려 든다.
Tip 3. 막스 벤제, 정보미학의 형성
1949년『수학의 정신사의 윤곽』이라는 글에서 벤제는 예술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사회에서 일어난 급변보다는 무엇보다도 수학에서 일어난 급변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글의 말미에서 그는 유클리드공간 속에서 가능한 형의 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미학을 “유클리드 미학”이라고 명명하면서, 이와 달리 비유클리드 수학에 기초한 “비유클리드 미학”이 가능한지 묻는다.
정보, 지향성, 실현
벤제에게 중요한 것은 사변철학의 핵심을 추방하는 게 아니라, 예술비평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것을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벤제의 철학적 사유는 정보, 지향성, 실현의 개념을 서로 결합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섀넌의 정보이론, 후설의 현상학, 화이트헤드의 과정의 철학이 동원된다.
“과정의 철학은 존재/비존재의 플라톤주의를 벗어나 생성을 강조한다. 우주를 이루는 것은 공간을 차지하는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그가 ‘경험’이라 부르는 것의 실현, 혹은 비실현의 과정들이다. 이 과정과 실현은 또한 미적일 수도 있다. 벤제는 작품을 ‘미적 대상’이 아니라 ‘미적 상태’로 규정한다.
전통 미학에 도전하다!
벤제의 정보미학 중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거시미학과 미시미학의 구별이다. 그는 이것을 ‘내용과 형식’이라는 전통미학의 범주를 대체할 개념적 도구로 이해한다. 특히 대상성이 없어 전통적인 의미의 내용(제재와 주제)을 가질 수 없는 비재현 현대회화의 경우에 고전적 미학의 분석틀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벤제는 미시미학적 수준에서의 통계적 실재와 만드는 거시미학의 수준에서 그 통계적 실재의 해석을 구별한다. 이 구별에 힘입어 그는 미적 생산물은 프로그래밍 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레퍼투아(repertoire)와 분포 메커니즘을 부여하면 컴퓨터로 미적 대상을 생성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적 정보’는 예술가-작품-관찰자의 커뮤니케이션 사슬 속에서 관찰자에 의해 미적 대상에 부여되는 것으로, 계산기 자체가 더 큰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닌 한 그 자체로는 프로그래밍 될 수 없는 것이다.
언캐니 밸리, 사랑이 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
"Uncanny Valley (혐오감의 계곡)" 효과는 일본의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1970년에 발표한 것으로 인간의 로봇에 대한 감정 변화를 다룬 이론이다. 사람들은 인간형의 인공체를 사랑하지만 일정 정도가 넘어서면 급작스럽게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인간과의 유사성'을 X축에 그리고 '호감도'를 Y축에 놓으면 '거의 인간과 유사한 것'과 '완전한 인간' 사이에 매우 큰 감정의 기폭이 나타나는데 그것을 '혐오감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사람의 표정과 팔다리를 가진 벅스 버니가 실제 토끼보다 더 애정이 간다. 주인공 로봇은 대부분 인간형이지만, ‘나쁜 로봇’은 곤충형이거나 파충류를 모델로 한다. 하지만 좀비는 거의 인간의 모습과 가깝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싹한 공포감을 준다는 등의 것들이 그것이다.
언캐니 밸리의 원인
Ⅰ. ‘차이’에 대한 이끌림
어떠한 사물을 맞닥뜨렸을 때, 인간은 그 사물이 자신과 유사성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 밖의 자신과 가장 유사성이 높은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유사성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인간은 오히려 차이성에 더 주목하는 본성이 있다.
Ⅱ. 죽음에 대한 공포 연상
인간은 시체를 보면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감을 연상시킨다.
Ⅲ. 진화심리학적인 경계심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혐오감의 계곡에 속하는 개체를 만났을 때 서로가 같은 종(種)이지만 자신에게 잘못된 유전자를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경계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진중권(미학자, 광운대 정보과학교육원 특임교수)
196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미학, 해석학, 언어철학을 공부하다 1999년 귀국하여, 인터넷과 언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회비판 논객’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탁월한 논리, 신랄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글쓰기와 언변으로 유명한 그는 가장 대중적인 ‘논객’인 동시에 뛰어난 ‘미학자’로서 『미학 오디세이 1,2,3』를 비롯, 다수의 미학관련 저서를 집필하였다.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겸직 교수, 동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정보과학교육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