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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고전 읽기에 대한 이의 제기!
한국 고전 소설을 읽는 두 가지 대표적인 방식이 있다. 하나는 효와 충, 절개 등 당시의 도덕을 환기하는 교훈적 은유로 읽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중세의 계급적 질서의 반영 내지 비판으로 읽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읽기 방식에 문제는 없을까? 중세의 계급적 질서를 환기시키는 독서는, 그것을 넘어서야 할 것으로 간주하고 있던 이후 세계의 목적론적 해석이 아닐까?
문학에 반영된 현실을 고려하는 반영론적 관점,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에 대해 고려하며 읽는 효용론적 관점, 작품의 내용을 작가의 성향 자체 등과 연관지어 읽는 표현론적 관점 등 문학을 읽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학 독해가 아닌, 내재적 독해가 이 수업에서 선택한 문학 읽기 방법론이다. 내재적 독해란 작품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요소 그 자체로만 작품을 읽는 것을 말한다.
즉, 이 수업에서는 문학 작품에 작가의 사상, 시대, 문화, 구도를 끼워 맞추는 초월적 독해를 지양하고 내재적 독해를 해낼 것이다. 그 독해를 수행해나가는 과정에 철학 개념들이 적극적으로 동원된다. 한국 고전 소설에 대한 새로운 철학적 실험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고전 소설의 철학적 실험
작품을 구성하는 다양한 성분들이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며 멀어지고 가까워지는지, 그럼에 따라 각 성분들의 위상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럼으로써 어떤 의미가 생성되는지를 다루고자 한다. 이러한 새로운 고전 읽기에는 현대 철학의 개념들이 사용될 것이다. 따라서 이 강좌에서 시도되는 실험들이 다소 아찔하고 파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륜이 곧 천륜이었던 조선시대의 작품들을 반(反) 인륜적으로 읽으려는 실험을 시도한다. 아버지를 위해 희생했던 심청이, 그녀는 과연 효녀인가? 효라는 개념으로만 읽어냈던 <심청전>을 새로운 개념으로 새롭게 재해석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바친 것은 과잉 효도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져보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또, <콩쥐팥쥐전>에서는 착한 콩쥐의 ‘해피엔딩’을 넘어서는 새로운 철학적 실험을 가할 예정이다. 한국판 신데렐라가 있다면 단연 콩쥐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콩지팥쥐전>의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 콩쥐를 도와주었던 검은 소와 두꺼비는 신데렐라에서 등장하는 동물과는 다르다. 콩쥐는 동물과 협력하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신데렐라를 도와주었던 동물들은 도구로 이용되는 데 그칠 뿐이다. 이외에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 수업을 통해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국 고전 소설의 이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풍부한 읽기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진경(사회학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 근대적 주체의 생산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이들의 ‘코뮨’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자본주의 외부의 삶과 사유를 시도하며, 근대성에 대한 비판 연구를 계속해 온 활동적인 사회학자이다. 87년 발표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로 명성을 얻은 후, ‘이진경’이라는 필명으로 ‘탈근대성’과 ‘코뮨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또한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