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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현대 예술, 길라잡이가 필요해!
누구나 한 번쯤은 미술관을 찾아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작품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런 허세의 욕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우가 있다. 가령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작품을 만났을 때나 모리스 블랑쇼의 『기다림 망각』과 같은 소설을 읽었을 때가 그러하다.
그 순간 우리의 머릿속에는 ‘예술가는 왜?’라는 질문이 지나가곤 한다. 게다가 그 작품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금액으로 거래된다는 소식까지 더하게 되면 이 세상이 쓸모없는 데 허비하는 사회적 자원이 너무 많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최진석의 강좌 <예술이론의 이데올로기>는 이처럼 현대 예술의 알쏭달쏭함과 난해함 속에 빠져버린 우리들에게 현대 예술과 문학을 이해하는 멋진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뒤샹의 <샘>과 존 케이지의 새로운 예술
현대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샘>이라는 작품을 통해 일상에서 접하는 사물에 불과한 변기 또한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한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는 <4분 33초>라는 작품에서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를 하지 않아 객석의 관객들을 당황시켰다. 이후 누군가 ‘왜 연주를 하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그는 ‘정말 아무 연주도 못 들으셨나요?’라고 반문한다. 비록 4분 33초 동안 훌륭한 연주자들의 공연은 없었지만, 그 사이에 관객들은 다른 관객들의 웅성거림, 당황한 사람들의 속삭임과 같은 소음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잡음 또한 음악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통찰. 그 통찰을 존 케이지는 보여준 것이다.
예술, 불온한 것을 상상하라!
이처럼 현대 예술은 기존의 규칙과 질서를 위반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할 때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예술의 본질이란 어쩌면 기존의 질서에 포착되지 않는 이질적인 타자를 만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힘이 아닐까?
이번 강좌를 통해 우리는 마르크스의 직관과 사유를 출발점 삼아 예술이론 속에 펼쳐진 현대 문학과 문화비평의 역사를 개괄해 보려고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루카치와 푸코, 들뢰즈와 데리다를 날렵하게 주파하면서 문학과 문화, 예술과 미학의 현대성이 열어놓은 우리 시대의 문제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최진석(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창과 교수)
수유너머104 회원. 러시아인문학대학교 문화학 박사. 정통을 벗어난 ‘이단의’ 지식, ‘잡종적’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잡학다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이 공부길에서 수유너머의 친구들이 (불)친절한 동반자들임에 늘 감사해 한다. 그렉 램버트의 『누가 들뢰즈와 가타리를 두려워하는가?』, 미하일 리클린의 『해체와 파괴』를 번역했고, 『불온한 인문학』 등을 함께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