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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뿌리’라는 말은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 언어이다. 그러나 ‘개념-뿌리’는 굉장히 복합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즉, 어떤 말이 하나의 맥락이나 하나의 대상을 가리키거나,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아주 두텁게, 켜켜이 쌓인 의미론적인 두께를 갖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간이라든가, 우연이라든가 하는 말들은 특정한 철학자가 쓰는 전문용어가 아닌 지극히 일상적인 말이지만, 그 말에는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의미의 두께가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의 사유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현대사상의 개념-뿌리를 살펴보면서, 현대철학에서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어휘들을 익히고 더욱 깊이 있는 사유를 해보자.
시티라이트(City Lights, 1931) 영화 도입부분에 동상 제막식 장면이 있다.
동상 제막식이라는 것은 굉장히 심벌릭하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영웅이 있고, 영웅을 찬양하는 장관이 나와서 축사를 하고, 기자들이 사진을 찍는다. 인간사의 심벌릭한 차원이 굉장히 잘 나타난 것 중의 하나가 동상 제막식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사람들이 제막식을 하려고 동상에 씌워놓은 큰 천을 벗기니 그 동상 한가운데서 거지가 자고 있다. 동상은 하얗다. 그런데 거지는 까만 옷을 입고 동상 한가운데서 자고 있었다.
하얀 동상 한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장면은 심벌릭한 인간사회 체계, 상징으로부터 일종의 변형을 일으킨다. 상징계를 변형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실제계이다.
타자 (他者)
영어로는 the other 또는 복수로는 others에 해당하는 말이고, 불어로 하면 l'autre(로트르)이다. 타인의 반대말은 자아. 타자는 지시 대상이 무엇이냐 혹은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이 사용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아닌 타인도 되고, 그다음에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인간이 아닌 존재, 동물이나 식물 이것도 인간에 대한 타자이다. 인식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인식의 저편에 있는 것, 우리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파악 불가능한 것, 그런 것도 어떤 면에서는 타자인 것이다.
차이(difference) & 차이생성(differentiation)
① 차이
현대사상의 핵심은 차이 자체가 아니라 차이가 만들어지고, 차이가 없어지고, 차이가 증폭되고, 차이가 감소되는 등등 하는 차이의 운동, 차이의 생성, 차이의 작용 즉, differentiation이다.
차이라고 하는 말이 함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인식주체가 파악하는 차이와 다자(多者)사이의 차이이다.
② 차이생성(differentiation)-구조주의 the symbolic
차이는 대상과 주체의 문제이다. 대상과 주체라는 이원의 문제인데 구조주의 사고의 특징은 대상과 주체 사이에 그 보이지 않는 언어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즉 일종의 룰이 존재하는 것이다. 야구의 룰과 같은 언어적인 공간은 우리 눈에 전혀 보이지 않지만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룰에 입각해서 벌어진다. 그러한 것을 구조주의에서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안(interiority) & 바깥(exteriority)
① 안과 바깥의 개념 정리: 공간적인 분절(spatial articulation)
안과 바깥이라는 것은 우리의 공간적 표상이다. 안(interiority)이라고 하는 것은 거기에 존재하는 사람들 또는 사물들이 같은 테두리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테두리 바깥으로 가면 이 안에 있는 존재와는 구분이 된다.
② 존재론적인 어휘-안과 바깥
어떤 그 말이 은유적으로 확장되어 가장 추상적인 상태에 도달하면 존재론적인 어휘가 된다. 어떤 특정한 영역, 특정한 시대, 특정한 어떤 사람에 관계없이 가장 추상적인, 모든 걸 아우르는, 나쁘게 말하면 좀 막연한 그런 어떤 어휘에 도달하게 되면 그게 존재론적인 어휘가 되는 것이다.
무의식(unconsciousness)
① 무의식이란-우리/나 안의 타자
무의식은 일종의 타자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무의식이라는 것은 우리/나 안의 타자인 것이다. 또는 나 안의 바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즉자(in itself) & 대자(for itself)
헤겔적인 즉자(in itself)와 대자(for itself)
즉자’(卽自, Ansich)는 ‘본래적인 것’ ‘자체적인 것’으로, ‘대자’(對自, Fursich)는 ‘자각적인 것’ ‘의식화된 것’으로, 그리고 ‘즉자대자’(An-und-Fursich)는 앞의 두 요소가 종합된 것이다. 즉 ‘완전무결한 전체적 · 절대적인 것’인 것이다.
능동(action) & 수동(passion)
플라톤적 맥락에서 능동 하거나 수동 하는 그런 존재들, 그런 모든 존재들이 reality다. 그것을 거꾸로 뒤집어 말하면, 모든 존재들은 Action을 하거나 Passion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쨌든 Action, Passion이니까 뒤집어 말하면, 모든 존재들은 Action을 하거나 아니면 Passion을 하는 것이다.
주체(subjectum)
데카르트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주체가 등장하게 되었다. 원래 subjectum(주체)라는 말은 주체가 아니라 어디에 복속되어 있다는 주체의 반대되는 의미를 지시한다. 즉 subjectum이라는 것은, sub는 아래고, jectum은 던져진다는 것으로 어떤 밑에 던져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공간(space) & 시간(time)
시간의 종합-살아 있는 현재
시간의 종합이 없다면, 현재는 흐르지 않는다. 그저 단속적인 계기만이 가능하다. 영어의 succession이라는 단어는 연속적이지만, 끊어지면서 연속적이다. 예컨대 ‘물방울이 똑, 똑, 똑,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succession’이다. 물이 쭉 흐르면 succession이라고 하지 않지만 물이 끊임없이 흐르면 continuous한 것이다. 즉 successive하다는 것은 똑, 똑,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