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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시와 영웅
서사시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리는 장구한 작품이다. 여기서 ‘한 사람’의 자격을 부여받는 이가 바로 영웅이었고, 따라서 서사시는 언제나 ‘영웅’서사시였다. 전통적으로 서사시는 사회가 원하는 이상으로 구성원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을 해왔으며, 이에 맞춰 영웅은 공동체가 개인에게 부여하는 행동규범의 롤 모델이자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출되는 원형 이미지였다. 본 강좌는 동서양의 서사시 네 작품의 영웅과 영웅담(또는 모험담)을 살핀다. 서사시에 대해 과문하더라도, 줄거리에 대한 선생님의 찬찬한 설명과 이해를 돕는 시각 자료들이 풍부하니 영웅의 여정에 함께 떠날 준비만 하시라.
서사시들 함께 읽기
우선 본 강좌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보다 생소했을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를 함께 살필 수 있다는 데서 유의미한 성취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라마야나>와 <오디세이아>를 서로 비춰가고 교차해가며 읽음으로써 서사시들 간의 닮음과 다름을 살피는 작업이 전 강에 걸쳐 진행된다. 가령, <마하바라타>와 <일리아스>는 전쟁담이라는 점에서 비슷하고, <라마야나>와 <오디세이아>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긴 모험담이라는 데서 닮아 있다. <라마야나>의 라마는 ‘청년’ 영웅이지만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장년’ 영웅이다. 이렇듯 서사시들의 비교 읽기가 작품들의 인물, 사고관, 세계관 등을 더욱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새로운 영웅, 오디세우스
영웅들 중에서도 오디세우스는 독특하다. <일리아스>에서 오디세우스와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판이하다. 후자의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처럼 불멸의 무훈을 바라는 전사도 아니요 신의 화신 라마처럼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영웅도 아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에게 돌아가 ‘늘그막의 평온한 희열’을 소망하는 인물이다. 본 강좌는 영웅의 무대를 전장에서 ‘일상’으로 옮긴 오디세우스에게 특히 주목한다. 아내인 페넬로페(여성성이자 곧 세계를 의미)와 결합하며 온전한 자신이 되는 오디세우스가 영웅보단 생활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시의 주인공이 된 것은 이것이 당대의 새로운 이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더욱이 <오디세이아>에는 식사 장면이 자주 등장하고 여성친화적인 부분도 왕왕 찾을 수 있어 흥미롭다.
영웅이 되는 여정
오디세우스가 보여주었듯 영웅은 전쟁과 폭력의 환란 속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 무대는 우리의 일상일수도 있다. 서사시들에 대한 심리학적 독해는 영웅들의 모험과 여정이 실제 경험일수도 있지만 ‘내면의 여행’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그들의 내적 성숙과 내면 정체성 확립 과정에 대한 주인공이 우리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그간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환란고초가 있었나? 영혼의 여정을 경험했나? 나는 영웅이 될 수 있나? 이미 우리 주변에 영웅들이 있지만 우리는 미처 보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극복한 내면의 영웅들. 영웅의 여정은 이 자리에 앉아서도, 집 밖으로 한 발짝 떠나지 않고서도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본 강좌가 알려준다,
김영(신화학자, 인도학자)
동국대 불교 교학과 석사 과정에서 공부하다가 2004년 인도 푸나(뿌네) 대학으로 유학, 산스크리트어(싼스끄리뜨)와 팔리어(빠알리어) Low Diploma와 Certificate를 수료했다. 이어 같은 대학에서 빠알리어(남방불교와 삼장)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싼스끄리뜨어 Higher Diploma를 수료했다. 또 같은 대학에서 싼스끄리뜨 베다어(힌두교와 인도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싼스끄리뜨 빠알리 문학연구소에서 번역 및 학술 활동을 진행했다. 2016년 뿌네 데칸 칼리지에서 논문 <인도와 중국의 영웅신화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여섯 가지 키워드로 읽는 인도신화 강의』, 『바가와드 기타 강의』가 있고, 역서로 『라마야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