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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20세기가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난 세기는 하이데거의 세기인 동시에 니체의 세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니체에 대한 소문만큼 니체의 텍스트로 들어가는 길에도 난관이 무성하다. 특히 처녀작인『비극의 탄생』은 니체 사상의 전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텍스트임에도 읽기가 쉽지 않다. 비극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인 동시에 미학적 원리에 대한 에세이이기도 하고, 문명에 대한 비판서인 동시에 삶을 긍정하기 위해 디오니소스적 철학을 선언하는 팸플릿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수사로 가득 차 있는 탁월한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원숙기의 니체는 “자기비판”을 하면서도 이 ‘불가능한 책’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 강좌는 이 놀라운 책에서 핵심적인 구절들을 뽑아 직접 읽어보며 니체와 함께 긍정하는 사유의 춤으로 초대한다.
삶을 긍정하기 위한 허무주의
니체는 삶을 긍정하지 않는 것들을 경멸했다. 그가 쇼펜하우어로부터 배운 것은 염세주의였지만 곧 삶을 긍정하기 위해 허무주의적 사유를 통한 비판으로 나아갔다. 그리스 비극의 본질과 역사를 선택한 것은, 찬란했던 그리스 비극의 시대가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의 시절에 막을 내리기 시작해 헬레니즘의 명랑함을 통해서 종말을 고한 것이, 그가 살던 독일, 더 나아가 유럽 문명의 상태와 겹쳐졌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히 고전 예술에 대한 미학적 연구서를 쓰려 하지 않았고 당시 문명에 대해 영감에 찬 예언서까지 함께 내놓으려 했다. 니체는 병든 허무주의에 빠져 굴욕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극을 통해 고통을 직시하고 예술을 통해 구원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비극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왜 소크라테스적 문화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지, 이 지식과 이해를 통해 현대인은 어떻게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지,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일생을 관통하는 긍정의 철학이 디오니소스적 정신을 통해 처음 선을 보인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디오니소스적인 철학
니체의 탁월한 분석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은 디오니소스다. 그러나 그리스 비극에서 디오니소스적인 합일과 도취의 원리는 혼자서 존재하지 않으며 전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비극은 고귀한 자, 전사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이 삶의 고통과 부조화를 직시하는 동시에 신화를 통해 인간의 삶을 정당화하고 구원받아 더 건강한 인간이 되기 위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품이다. 황홀경의 도취와 합일의 음악이 명증과 개체화의 언어를 만나고 하나로 통합되면서 극복과 긍정과 생명의 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극은 삶을 위한 예술이고, 예술은 형이상학적 구원이 된다. 우리는 니체와 함께 실존의 의미를 물으며 디오니소스적 사유의 춤을 함께 출 수 있다.
이동용(인문학자)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5년 9월에는 『한국산문』 제113회 신인수필상 공모에 「오백원」이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니체와 함께 춤을』,『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