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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심심함과 외로움을 달래고, 가까운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극장을 찾고 TV를 켠다. 우리의 일상은 습관처럼 친숙한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를 본다는 것이 그저 그런 일상이 아닌 순간이 찾아온다. 갑자기 매혹적인 이미지에 넋을 잃고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빠져든다. 이미지 속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화한다. 때로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뒤섞이는 비선형적인 시간 여행을 경험한다. 우리에게 영화란, 이미지란 무엇인가? 머릿속을 맴도는 혼란스러운 생각에 지레 겁먹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사유의 도구들이 필요하다. 이번에 우리가 사용할 사유의 도구는 들뢰즈의 영화 철학이다.
이미지의 존재론
들뢰즈에게 이미지란 세계와 단절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구원하고, 대상으로 전락한 세계의 존재론적 지위를 회복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이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읽기 위해서 베르그손과 니체를 경유해야 한다. 베르그손의 운동-이미지를 통해 세계 존재를 새롭게 이해하고, 니체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서로 결합하는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만난다. 물론 들뢰즈의 『시네마』는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최고의 전문가 이지영 선생과 함께 미로 같은 들뢰즈 철학에 숨겨진 비밀 통로를 발견하여 한달음에 달려가보자.
차라투스트라가 말하고자 한 것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의무와 희생으로 점철된 수동적 삶을 낙타에 비유했다. 낙타는 자신의 짐을 지지 않는다. 그저 주인의 등짐을 지고 묵묵히 사막을 건넌다. 걷는 낙타의 인내심과 희생의 숭고함을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지만, 낙타의 정신으로 산다면 인생에서 후회만 남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선택이 아닌 세상이 정해준 기준대로 사는 것이 낙타의 삶이다.
‘되기’의 철학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낙타와 같은 위기에 처했다. 우리는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와 이미지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 현대인은 생각보다 그리 주체적이거나 능동적이지 않다. ‘내가 자발적으로 미디어와 이미지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디어 이미지가 우리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볼 뿐이다. 낙타가 된 우리에게 들뢰즈는 ‘되기’의 가치를 강조한다. 노예에서 주인으로, 낙타에서 사자로,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탈주할 것을 권유한다. 미셸 푸코는 언젠가 질 들뢰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들뢰즈라는 번개가 일었다. 아마도 어느 날 20세기는 들뢰즈의 시대로 불릴 것이다."
세계의 진리가 섬광처럼 번뜩이는 이미지의 철학자, 들뢰즈를 만나러 떠날 시간이다.
이지영(철학자, 한국외대 세미오시스 연구센터 연구교수 )
불문학과 베르그손을 공부한 후「들뢰즈의 『시네마』에서 운동-이미지에 대한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영화 프레임에 대한 연구」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예술전문사(M.A.)를 취득하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영화미학으로 두 번째 박사 논문을 쓰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들뢰즈의 영화 철학과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디지털 영화, 영화의 윤리학 등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홍익대, 서울대, 옥스퍼드대학 등에서 영화와 철학을 주제로 강의했고, 현재는 세종대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철학이란 구체적인 것 속에서 더 빛이 나며, 예술처럼 감동과 치유의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