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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눈을 말하다.
현대 인문학 사유들을 접하면서 심심치 않게 마주치는 것 중의 하나는 시각(눈)에 관한 담론이다. 메를로-퐁티(시지각), 사르트르(시선 간의 투쟁), 라캉(거울과 이미지), 바타유(눈 이야기), 푸코(판옵티콘), 바르트(카메라 루시다) 등등. 현대 인문학의 거장들이 모두 눈 혹은 봄(seeing)/보임(seen),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관해서 한마디씩은 한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서구의 사유는 유대-기독교 전통의 음성중심주의에서, 근대에 이르러 투명성과 이성을 담보한 시각중심주의(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 광학에 대한 집착)로 옮겨왔고, 현대에 들어와 앞서의 거장들이 시각중심주의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당대의 지적 유행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진리, 빛 그리고 눈이 맺고 있는 관계를 고려해볼 때 인문학이 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각의 현상학
여기 소개하는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1930년대 이후 서구 지성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현상학에 관한 영향에서 비롯한다. 라캉, 메를로-퐁티, 바타유 등이 코제브의 헤겔의 정신현상학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고, 사르트르는 하이데거를 직접 비판적으로 계승했으며, 푸코, 들뢰즈, 데리다도 현상학 비판에서 자신들의 철학작업을 시작했다. 바르트의 경우는 구조주의에서 말기에는 현상학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8번의 이야기들은 모두 일정 정도 현상학, 정신분석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라캉은 시각충동의 대상으로서의 응시와 욕망을 추동하는 것이 회화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를. 메를로-퐁티는 뒤섞임과 애매함을 회화적으로 표현 한 세잔의 그림을, 바르트는 어머니의 어릴적 사진을 보면서 애도하는 중에 사진의 본질과 죽음[충동]에 관한 성찰을, 사르트르는 시선 간의 투쟁과 나를 무화시키면서도 동시에 나의 존재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자로서의 타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뢰즈는 베이컨의 회화를 통해 구상(재현)이 아닌 형상, 생성(운동)과 기관 없는 신체를, 푸코는 3명의 화가의 그림을 통해 각 시대의 에피스테메를 조명하고, 바타유는 시적인 글쓰기를 통해 에로티즘, 악과 순수함, 신성함을 역설한다.
유충현(독립연구자)
중앙대학교에서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영문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대안연구공동체, 다중지성의 정원 등에서 정치학과 정신분석을 접목시키는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유의 새로운 이념들』(공저),『20세기 사상지도』(공저), 『문명이 낳은 철학 철학이 바꾼 역사 2』(공저)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루이비통이 된 푸코』(공역), 『선언』(협동번역), 『봉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