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광기(狂氣)의 역사 속에 살고 있는가?
서양 중세시대의 나병환자, 르네상스 시대의 성병환자에게 행해지던 배제(排除)와 소외(疏外)의 칼날은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자 그 끝을 ‘광인(狂人)’에게로 겨냥하기 시작한다. 고전주의 시대의 상업자본주의적 배경과 발맞추어 등장한 부르주아적 질서는 자신들의 가치관 밖의 모든 존재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기 시작하며, 시대 속의 비이성(非理性)적 존재들은 결국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며 ‘광기’는 그 자체로 질병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과연 우리가 또 다른 소외와 배제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가?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강독하는 놀라운 사유의 여정을 통해, 현대 사회에 내재된 배제와 타자화의 실체를 되짚어보고 언제나 새롭게 등장하는 타자와 외부와의 만남에 있어서의 새로운 시각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특히 제2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번 강의를 듣는 동안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이성과 비이성의 영역에 대하여 귀를 기울인다면 보다 흥미로운 푸코에의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 고전주의 시대, 여전히 남아 있는 르네상스의 그림자
18세기에 들어서며, 유럽의 과학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엄밀 과학’과 함께 ‘질(qualité)의 과학’으로 발전된 과학은 의학에 있어서도 질병의 분류학이라는 매우 이성적인 방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정념’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광기는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전히 이전 시대로부터 이어지는 재래식 치료법들이 병행되고 의학은 여전히 그 영향을 펼치기 어려웠다. 다만 광인들에 대한 대감호가 실행되면서 이는 역설적이게도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낳게 되고, 이후 광기를 병리학의 영역에 들여놓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광기의 역사』 제2부를 통하여 광기가 도덕적 결함으로부터 벗어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질병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비이성과 이성 사이의 전환과 그 역사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돌침대에서 자면 허리 병에 좋다더라.”, “이 돌을 가지고 있으면 행운이 온대.”. 오늘 날에도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광물의 이미지와 치유의 효과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들이다. 시밀리스 시밀리부스(similis similibus)로 불리는 유사한 것에서 치유의 이미지에서 찾아내는 방식은 더욱 흔하게 발견된다. 무릎이 아파서 소의 무릎 연골을 끓여먹는 다거나 하는 행위들이다. 제1부에 비해 보다 철학적 관점으로 진행되는 2부의 내용은 스스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푸코 전문가 이정우 교수의 해설과 더불어 읽다보면, 우리가 고전주의 시대의 사례들을 접하면서 느끼게 될 18세기의 미숙함이나 비문명화에 대한 거부감이나 놀라움을 넘어서, 결국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비이성의 그림자는 여전히 여러 곳에 걸쳐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오늘 날의 사회에까지 그 힘을 가지고 있는 근원이며 우리가 이 강의를 통해서 얻어갈 수 있는 보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