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리식 정치 문법을 만나다
새로운 정치적 개념들을 위하여
네그리는 처음부터 근대라는 틀을 '삶을 구속하는 답답한 지평'으로 보았다.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부수어야 할 틀은 바로 권력(Power, Pouvoir) 개념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자기 공장』(국내 미번역)의 첫 대목에서 네그리는 전혀 다른 사상가들인 베버, 슈미트, 레닌에게서의 초월적 권력 개념이 상동성(homolohy)을 띠고 있음을 주목한다. 지키려는 사람이나 부수려는 사람이나 동일한 대상과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정치적 행동들은 양자택일 - 다른 권력이냐 아니면 무정부 상태 혹은 삶의 부정이냐 - 의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네그리의 생각이다.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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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삶정치
네그리는 프랑스의 푸코와 들뢰즈에게서 나타나는 삶정치 개념과 유사한 인식론적 발전을 니체를 통해 제시한다. 그는 실증주의적이고 생기론적인 목적론을 파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노력은 도덕의 계보학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네그리는 도덕의 계보학은 주체화 과정의 집합과 유물론적 목적론의 공간이며, 유물론적 목적론은 기획적 투사성(projectuality)의 위험을 감수하고 주체적 원천의 유한성을 안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디스토피아”(distopia)이다. 쉽게 말하면 계보학이란 현재 상태의 영원한 반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삶의 외부에 어떤 유토피아를 설정하는 것도 아니며, 현재를 계속 갱신해가는, 계속적인 차이를 생성해가는 것이다.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네그리는 척도가 붕괴된 탈근대의 상황에서는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인다고 한다(전쟁의 평화
Paxbelli: 평화는 전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 네그리는 발전을 재고, 규제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이 사라지면, 규범을 창출하는 것은 결국 가장 강한 자들의 폭력이 된다고 한다.
폭력(비합리성)이 시장(자본주의적 합리성)의 보완물이 될 때 폭력은 사회가 원만하게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며 시장의 조건들을 넓힌다.
“시장이, 생산과 축적의 기준들이 사회적 장 전체를 휩쓸 때에, 사회적 규제의 규범들과 척도들이 위기에 처할 때에, 가치화의 대안적 기준들이 자본주의의 중심적 및 주변적 장들에서 나타날 때에, 그때 자본주의를 지배할 힘을 가진 거대체제적 힘들(systemic forces)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비합리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예외상태의 보편적 선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러한 ‘예외상태’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바로 여기서 전지구적인 전쟁상태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다중과 공통적인 것
탈근대의 저항은 특이성들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이 특이성들을 한데 결합하는 개념이 바로 ‘다중’이다. 물론 다중은 단순히 개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다중은 단순히 개념일 뿐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실재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반자본주의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을 관찰함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다중의 심장부에서 출현하여 “다중을 주체적으로 효력을 발하게 하고 객체적으로 적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다.
창조적 저항의 관점에서 들뢰즈를 계승한 푸코
네그리는 정치적 실천을 통한 공통적인 것의 구성이라는 인식이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들어 있지 않다고 하였다. 네그리는 들뢰즈가 못하고 있는 것을 푸코가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푸코가 들뢰즈를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들뢰즈를 계승. 푸코는 생산의 존재론을 삶정치적 짜임새 속으로 다시 삽입한다. 그리하여 푸코의 고고학과 계보학은 존재의 생산에 대한 이론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는 놀라운 직관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푸코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도달한다. 권력이 모든 사회적 관계들로 (그 관계들의 성격에 관계없이)퍼질 때,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계급관계의 낡은 이분법적 구조에서 더 섬세하고 덜 가시적이며 무한히 더 효율적인 권력분석학으로 이동할 때, 적대 또한 사회 전체로 퍼지며, 그 짜임새의 모든 그물코에 도달한다.”
네그리와 민주주의
네그리는 민주주의의 구분이 스피노자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본다(『윤리학』 후반부와 『정치론』). 그 이전에 마키아벨리에게서 이미 통치 형태와 그다지 관계없는 민주주의 개념이 탄생하며, 영국 혁명에서 이루어진 논의들(스피노자와 비슷한 시기)에서도, 그리고 이 외에 혁명적 프란시스코주의(Franciscanism) 등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유로운 갈등 관계들에 의해서 조직되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통치로서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국가의 절대적 적으로 되었다. 이러한 적 즉, 절대적 민주주의를 통치 형태로의 민주주의에 흡수시키려는 시도가 항상 있어왔으나 탈근대로의 이행이 시작된 후에는 절대적 민주주의 개념이 근대의 범주들에 기반을 둔 통치 형태로 결코 다시 흡수,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이 네그리의 생각이다.
정남영(경원대 교수, 문학비평가)
서울대학원 영문학과에서 찰스 디킨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로서 디킨즈, 로렌스 등 영미작가와 영미소설을 주로 연구해 왔으며, 동시에 안토니오 네그리 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몇 편의 저서를 번역, 집필하였다. 현재, 경원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다중지성의 정원>의 상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