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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는 흔히 실존철학자로 분류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철학자는 아니었다.
법학, 의학, 심리학의 다양한 학문을 거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철학에 정착한 그는
누구와도 다른 독자적인 스타일로 실존철학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아내가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서 강단에서 쫓겨나야 했고,
전후 강단으로 돌아와 독일 대학의 반성을 촉구했지만 변절했던 동료들의 침묵 속에서 고독한 처지에 놓이자
결국 스위스로 건너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인 고난 속에서 그의 사유는 더욱 깊고 넓어졌는데,
그의 독특한 지적 여정을 반영하듯 그의 저작은
역사, 정치, 대학 개혁, 과학과 기술, 신학, 예술, 산업사회와 관료제, 국제 정치와 세계 평화 등
다양한 주제를 탐구하면서 현대 문명 전반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그의 철학 속에서 실존적 개인과 문명의 세계사는 분리되지 않으며
분열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조화와 구원에 대한 믿음이 전 체계를 관통하고 있다.이 「비극론」은 본디 『진리에 관하여』의 일부였지만,
역사성과 보편성, 근원적 직관과 철학적 사유, 비극적 현실과 구원 가능성, 종교와 예술, 철학의 관계 등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의 정수를 짧은 분량에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서 따로 떼어져 읽힌다.
야스퍼스에게 있어 비극은 세계사와 개인, 유한한 단독자와 무한한 포괄자의 만남을 매개하는 탁월한 소재로서
철학적 사유의 주제이자 대상이 된다.
위대한 비극 작품은 역사적인 시대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 상황에 대한 근원적 직관을 담고 있다.
비극은 문학의 형식인 동시에 현실의 사실이며, 비극적 현실은 우리의 시대가 가진 역사성이기도 하며,
우리 개인의 실존적 한계상황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 지식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을 창조하며 통일과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철학함에의 초대
야스퍼스의 글을 한 단락 한 단락 꼼꼼하게 읽으며 우리의 것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철학적 사유의 길이기도 하다.
야스퍼스는 비극적 지식을 사변적 연역으로 체계화하거나 하나의 세계관으로 절대화하지 말고,
오히려 근원적 직관으로서 보존하며 현상의 세계에서 계속 묻고 사색할 것을 권한다.
야스퍼스를 따라가며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역사를 환기하며 다양한 철학적 이론들과 대화하는 이동용 식 강의는,
야스퍼스가 권하는 철학적 사유를 함께 하는 실존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이동용(인문학자)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5년 9월에는 『한국산문』 제113회 신인수필상 공모에 「오백원」이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니체와 함께 춤을』,『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