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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örg M. Unger/Wikimedia Commons(CC BY-SA 3.0)
니체의 철학은 쓰러진 자에게 손을 내민다. 허무함을 느껴본 자에게 희망의 씨앗을 건넨다. 모든 것을 바쳐 사랑했던 것에서 역겨움과 구토증을 느껴본 자에게 한계를 알려준다. 한계를 알고 나면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이 한계라는 것을 모를 때 인생은 감옥처럼 변하고 만다. 답답하다. 죽고 싶다.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 출구가 없는 삶의 현장 속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할 때 하늘은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다.
이상과 우상 사이에서
생각하는 존재는 생각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이상과 우상은 생각의 결과물이다. 때로는 이상이 삶을 유익하게 만들어주지만 또 때로는 우상이 그 역할을 담당할 때도 있다. 떠나야 할 때도 있지만 또 때로는 다가서야 할 때도 있다. 인생은 영원한 밀물과 썰물과 같다. 다가서야 할 때는 용기를 갖고 당당하게 들이닥쳐야 한다. 물러서야 할 때는 냉정하게 떠나야 한다. 밤이 되면 쉬고 낮이 되면 일해야 한다. 그것이 자유자재로 된다면 인생은 아무 문제없다.
인생의 대부분의 문제는 이상과 우상을 구분 못해서 발생한다. 가져야 할 이상을 가지지 못해 쓰러지기도 한다. 버려야 할 우상을 붙들고서 간절한 기도를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모두 쓸데없는 짓거리들이다. 모든 생각은 처음에는 상큼한 발상으로 기특하게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때가 되면 썩어 들어간다. 고집을 피우고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고정관념이 되어 삶을 옭아맨다. 그런 생각은 자기 자신만 손해다. 아니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한다.
초인의 언어에 귀를 열어 보자!
『우상의 황혼』! 길지 않은 책이다. 그래도 한 줄 한 줄 읽다보면 수많은 생각과 고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신학은 단일성을 추구하며 간단한 것을 어렵게 설명하려 애를 쓰지만, 인문학은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길이 있어도 그것이 내 길인지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면 그 여정의 끝에서 얼마나 삶이 허무하다고 말할까. 그 끝에 가서 허무하지 않으려고 허무와 함께 철학을 하는 것이 니체의 철학이다. 그의 언어는 초인의 언어이다. 늘 쓰러지고 넘어서며 삶에 머무르고자 하는 언어이다. 그 언어에 귀를 열어보자.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니체전집 15)』 (백승영 옮김, 책세상, 2002)
이동용(인문학자)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5년 9월에는 『한국산문』 제113회 신인수필상 공모에 「오백원」이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니체와 함께 춤을』,『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