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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러의 자화상
뒤러는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놓고 <자화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이 그림과 함께 르네상스 운동에 참여했다. 스스로 신이 되는 그런 그림을 그려놓고 일말의 죄의식도 보여주지 않는다. 신성모독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중세 천 년 동안 인간성을 모독해온 교회를 향해 쓴소리를 내뱉고 있다. 그 소리를 화가는 자신의 그림 속에 담아낸 것이다. 그림을 보고 르네상스의 소리를 들어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 사람을 보라!
니체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으로 『이 사람을 보라』를 선택했다. 에케 호모, 이 말은 원래 빌라도가 예수를 지칭하며 한 말이다. ‘신을 보라’는 뜻으로 ‘이 사람을 보라’라는 말을 한 것이다. 신을 보라! 이 말을 생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자서전 제목으로 선택한 것이다.
니체는 신이 된 철학자이다. 신을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철학이다. 자기 자신을 믿는 신앙자라면 당연한 철학이다. 중세 천 년을 지나면서 신앙은 기독교의 형식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기독교가 기준이 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 형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루터가 이런 형식으로부터 벗어나며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일궈낸 것처럼, 현대인도 과거 인습적인 형식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형식으로 무장하는 종교개혁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신이 된 철학자
삶의 현장은 변화의 연속이다. 인생은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시간은 시계 속의 시간이 있는가 하면, 기회로서 주어지는 시간도 있다. 인식의 그물에 걸려든 시간이야말로 추억이 되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니체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인식의 그물을 위해 엮어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무엇이 그를 신으로 만들어냈는지,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성과 진리, 그리고 현대의 한계
니체는 현대 철학자이다. 근대를 끝장내고 현대라는 새로운 장을 연 철학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현대의 한계를 보고 말았다. 이성은 현대의 한계 지점이었다. 이성은 늘 정답을 추구하고 진리를 갈망하며 그 진리에의 열망 속에 갇혀 있다. 그런 이성은 지금과 여기라는 현실 인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진리라는 콩깍지에 씌인 채 사물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이동용(인문학자)
건국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바이로이트 대학에서 「릴케의 작품 속에 나타난 나르시스와 거울」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철학아카데미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2015년 9월에는 『한국산문』 제113회 신인수필상 공모에 「오백원」이 당선되어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 『니체와 함께 춤을』,『나르시스, 그리고 나르시시즘』, 『바그너의 혁명과 사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