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을 무대화시키기
라캉의 정신분석은 가부장적인 상징계의 차원으로부터 벗어나 실재계로 접근해가는 이론적 여정을 거친다. 실재를 중시하는 것은 ‘공백을 중시한다는 것’과 같다. 또한 공백을 중시한다는 것은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고 있는 아버지의 세계, 즉 상징계에 구멍과 균열을 내면서 등장하는 증상을 강조한다는 것과도 같다. 라캉의 정신분석은 증상을 소멸시키거나 상징계 차원으로 다시 길들이려 하지 않는 대신, 무대화시킨다. 이는 증상을 중심으로 우리를 억압하고 있었던 상징계를 무너뜨리고 재조합할 가능성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주체를 재구성할 가능성으로까지 나아간다.
분석가와 내담자가 함께 실천하는 정치적인 행위
라캉학파의 정신분석은 히스테리적 주체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히스테리는 치료되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화되어야 할 방황의 여정이다. 증상에 떠밀려 방황하는 주체인 히스테리증자들에게, 정신분석은 상징계 속으로 포섭하려는 대신 그 여정 속에서 그들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라캉의 정신분석이 치료라는 말보다 ‘실천’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석가는 존재 안의 필연적인 공백을 선물하고, 내담자는 그 공백을 선물받아 그 속에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채워나갈 가능성을 갖게 하는 것, 이것이 라캉학파의 정신분석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이고, 분석가와 내담자가 함께 실천하는 정치적인 행위이다.
정신분석의 여성주의적 태도
상징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남성적이고, 권력을 가진 모든 언어는 남성적 언어이다. 라캉학파의 정신분석은 임상 차원에서 존재 내의 공백 자체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가부장적 언어에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실천들로 가득 차 있다. 이는 공백 자체를 고립되어 공백 그 자체로 있게 하려는 실천들이며, 곧 이것이 라캉 정신분석의 여성주의적 태도다. 욕망을 가부장적 질서로 분리해내는 시도 자체가 이미 근본적으로 여성주의적 태도에 맞닿아 있다. 이때 가부장적 질서 바깥으로 나온 여성적 욕망은 기존의 질서가 통제할 수 없는 혁명적인 역능을 갖게 될 것이다.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라캉과 페미니즘의 결합 시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상현은 새롭게 시도되는 해석에서 그 해석에 참여했던 독자(혹은 주체)가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정신분석이란 각자의 언어를 스스로 발명해내는 데 초점을 둔다. 이는 페미니즘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징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남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여성은 자신을 설명하는 모든 언어를 남성들의 언어로만 표현해야 했고 여전히 그러하다. 그래서 라캉학파의 정신분석은 여성들이 여성들의 언어를 발명해낼 절차를 가정할 수 있는 것을 진정한 페미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에 도달하기 위해선 가부장적 언어와의 투쟁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 투쟁이 일어나는 순간 여성들은 영광스럽게 ‘타락’할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타락은 변화를 이끌고 진정한 윤리를 여는 시발점이다. 여성은 스스로가 타락을 일종의 욕망의 장소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의 언어를 발명해내고 탐닉하는 것, 이것이 정신분석의 여정이 제안하는 페미니즘의 절차다. 라캉에게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순간이 바로 여성(주체)의 삶이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백상현과 여성의 목소리를 찾는 여정을 떠나보자.
백상현(정신분석학자)
정신분석학자. 프랑스 발랑스의 '에꼴데보자르' 졸업 후 파리8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라깡의 정신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학위논문 : 「증상적 문장, 리요타르와 라깡」). 고려대, 이화여대, 숭실대 등에서 정신분석과 미학을 강의했으며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FLC 상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임상분석가를 대상으로 여러 형식의 강의를 시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깡의 인간학: 세미나 7의 강해』(위고, 2017), 『라깡의 루브르』(위고, 2016), 『고독의 매뉴얼』(위고, 2015),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책세상, 2014), 『헬조선에는 정신분석』(공저, 현실문화, 2016), 『발튀스, 병적인 것의 계보학』(현실문화, 근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