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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나의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가? 라캉에 의하면 우리가 태어나 처음 가졌던 욕망은 다양한 언어의 형태로 억압되고, 사회적으로 욕망할 수 있는 다른 것들로 대체되어 간다. 무의식은 사회가 허용하는 방식, 즉 윤리적인 방식으로 다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억눌린 욕망은 반복해서 다시 돌아온다. 그것도 고통의 형태로. 우리는 특정 사건을 마주할 때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감정과 고통을 느끼며,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에 맞서려 하지만 고통은 이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의 윤리적 문제
그렇다면 나 자신에게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주입하면 내 삶이 다시 나아질까? 라캉은 세미나 7에서 오히려 이런 생각을 가장 경계하며 강력하게 비판한다. 고통은 사라질 수 없는 욕망을 외면하고, 타자가 강요한 틀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모든 것들은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다수의 평균적 경향일 뿐이며, 이것에 맞게 누군가를 주조하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다. 여기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윤리적인 차원에서 다시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라캉의 세미나 7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모든 인식의 체계에 균열을 일으키며, 우리가 방황을 시작하도록 한다.
몰락의 윤리학과 예술적 승화
그리하여 우리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왔던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나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누가, 언제부터, 어떻게 이러한 기준을 내 내면에 만들어왔는가?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금까지의 ‘나’를 무너뜨리는 일과 다름없다. 그러나 산산이 부서진 자기 자신 위에서야 우리는 새로운 자기 자신을 세울 수 있다. 자신이 사로잡힌 도덕규범과 초자아의 환상들을 넘어서서 진정한 윤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고통을 내 손으로 멈추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예술가가 되는 것이 라캉이 우리에게 외치는 ‘인간학’이다. 이 지점에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예술과 만나게 된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새로운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라캉이 임상분석을 은유하기 위해 예술의 절차들과 목표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 비평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상현(정신분석학자)
정신분석학자. 프랑스 발랑스의 '에꼴데보자르' 졸업 후 파리8대학에서 예술학을 전공했다. 파리8대학 철학과에서 라깡의 정신분석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학위논문 : 「증상적 문장, 리요타르와 라깡」). 고려대, 이화여대, 숭실대 등에서 정신분석과 미학을 강의했으며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FLC 상임교수로 활동했다. 현재 임상분석가를 대상으로 여러 형식의 강의를 시도하고 있다. 저서로는 『라깡의 인간학: 세미나 7의 강해』(위고, 2017), 『라깡의 루브르』(위고, 2016), 『고독의 매뉴얼』(위고, 2015), 『라캉 미술관의 유령들』(책세상, 2014), 『헬조선에는 정신분석』(공저, 현실문화, 2016), 『발튀스, 병적인 것의 계보학』(현실문화, 근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