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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록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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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2000년 『제국』으로 전지구적 권력 질서의 새로운 지도를 그려낸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2004년 내놓은 『다중』은 그 속편이자 완결편이다. 『제국』에서 잠재적 역능으로만 스쳐 지나갔던 '다중(Multitude)'이라는 새로운 주체성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전지구적 전쟁 질서로 나타나는 제국의 시대에 다중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의 이행에서 전쟁의 성격은 어떻게 바뀌는가? 다중은 누구이며 어떠한 존재인가? 절대적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은 21세기 정치철학의 가장 논쟁적인 저작이다. 출간 이후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 제임스 페트라스의 『제국주의 없는 제국』 등 수많은 응답과 비판을 낳았다. 특히 다중이 노동계급, 민중, 대중과 어떻게 다른지를 둘러싼 논의는 파울로 비르노의 『다중』 출간과 프랑스 저널 『Multitude』의 지속적인 탐구로 이어졌다. 오랜 기간 네그리의 저서와 사상을 연구해온 조정환 선생의 명쾌한 강좌를 통해 오늘날 가장 최신의 정치철학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 강의특징
이 강의는 단순히 책을 해설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체적 현실과 다중 개념을 연결한다. 2008년 100일 넘게 거리를 달군 촛불 집회를 다중의 등장으로 분석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아주머니, 야자에서 도망나온 중고등학생, 예비군복 입은 민간인들이 하나의 공통 의제 앞에서 정치적으로 결집되는 양상을 '특이성들의 공동되기'로 설명한다.
강의는 전쟁 개념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정치에서 예외적 수단이었던 전쟁이 항구적인 것으로 변화하면서 무한전쟁의 악몽이 펼쳐지고, 영토 외부의 적과 내부의 위험한 계급 사이의 구분선이 사라진다. 9/11 테러 이후 이러한 양상은 일반적 형태가 되었다.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로의 생산 방식 전환, 국민적 차원에서 전지구적 차원으로의 노동 이행을 추적하며 제국의 시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비물질노동과 지적재산권의 사유화 문제를 다루는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지적재산권법이 창조자 보상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적 네트워크와 협력을 깨트리고 창조력을 고갈시킨다는 비판적 분석을 제시한다. MP3 다운로드 단속이나 소프트웨어 경고장 같은 일상적 예시를 통해 '공통된 것의 사유화'라는 추상적 개념을 구체화한다.
■ 추천대상
현대 정치철학의 최전선을 탐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특히 『제국』을 읽었지만 다중 개념이 모호하게 느껴졌던 독자, 신자유주의 시대의 저항 주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활동가, 맑스주의 정치학의 현대적 변용에 관심 있는 연구자에게 적합하다.
촛불 집회, 광장 정치, SNS를 통한 네트워크 저항 같은 21세기 정치 현상을 이론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유용하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를 체감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를 모색하는 이들, 전지구화 시대의 전쟁과 평화 문제를 깊이 있게 사유하려는 이들에게 권한다.
네그리의 저작을 처음 접하는 초심자도 수강 가능하다. 강사가 호모 사케르, 구성적 역능, 삶정치 같은 기본 개념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며, 마르크스의 방법론과 연결해 이해를 돕는다. 다만 정치철학에 대한 기초적 관심과 인내심은 필요하다.
■ 수강팁
전체 17강 중 1-2강에서 다루는 전쟁 개념의 변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국주의 전쟁과 제국적 전쟁의 차이, 예외에서 규칙으로 전환되는 전쟁의 성격 변화가 이후 논의의 토대가 된다.
7강 '다중의 개념'과 12-13강 '다중의 흔적들'은 핵심 구간이다. 다중이 노동계급, 민중, 대중과 어떻게 다른지, 존재론적 다중과 정치론적 다중의 구분이 무엇인지 반복해서 들으며 개념을 정확히 잡아야 한다. 다중은 단순히 '많은 사람'이 아니라 '특이성들의 공통되기'라는 점을 명심한다.
14-16강의 민주주의 논의는 강의의 백미다. 18세기 민주주의 기획이 만인의 지배를 일자의 지배로 종속시킨 과정, 절대적 민주주의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협력적 네트워크를 통한 삶정치적 생산'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네그리의 원저 『다중』을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강의에서 다루지 못한 디테일을 책에서 보충하고, 책에서 어려운 부분을 강의로 풀어가는 상호보완적 학습이 효과적이다.
■ 수강후기에서
"호모 사케르에 대한 강좌가 여러 개 있는데 조정환 선생님 1강에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교과서적인 커리큘럼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강좌에 빈틈이 없달까. 네그리의 다중을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었다."
"2008년 촛불 집회와 다중의 민주주의를 연결해 설명해주셨다는 점이 매우 시의적절했다. 유모차 아주머니, 야자 도망친 학생, 예비군복 시민 등이 특이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다중으로 정치적으로 결집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분석했다. '국가에 저항하는 국민은 더 이상 국민이 아닌 다중'이라는 해석이 명확했다."
"비물질노동과 지적재산권의 사유화에 대한 논의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지적재산권법이 창조자 보상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실제로는 지적 네트워크와 협력을 깨트리는 범죄행위로 나타난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다중 개념이 여전히 어렵다. 존재론적 다중과 정치론적 다중의 구분이 명확하게 와닿지 않았다. 반복해서 듣고 있다."
■ 마치며
네그리와 하트가 『다중』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결국 희망의 메시지다. 제국의 전지구적 전쟁 질서 속에서도 새로운 대안은 가능하다는 선언이다. 절대적 민주주의를 향한 전략적 행보는 결코 쉽지 않다. 제국의 주권과 대칭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되며, 무력과 폭력을 주권적으로 활용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민주적으로 생산해내야 한다.
성경의 엑소더스를 예로 든다. 파라오는 유대인들의 평화로운 도망을 허용하지 않았고, 10가지 재앙이 퍼부어진 후에야 떠나도록 했다. 아론은 추격하는 파라오의 군대에 맞서 후위 전투를 치렀고, 모세는 홍해를 갈라 파라오의 군대를 분쇄함으로써 엑소더스를 성공시켰다. 새로운 무기의 실험, 새로운 과학, 사랑의 기획 등 제국의 주권에 대항하는 다중 앞에는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근대 민주주의가 18세기에 만인의 지배를 일자의 지배로 종속시킨 미완의 기획이었다면, 이제 지구화 시대에 맞는 제도 형태와 실천의 창안을 통해 민주주의 개념을 재창안해야 한다. 사회적 생산의 소통적이고 협력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우리 모두가 삶정치적 생산을 통해 협력적으로 창출하고 유지하는 민주주의, 그것이 절대적 민주주의다. 조정환 선생과 함께 다중이 부르는 희망의 세레나데를 들어보자.
조정환(인문학자,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