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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를 읽지 않고 문학을, 사랑을, 시간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우리의 삶과 사랑, 시간과 진리를 충실하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안경이라면 이것은 어떤 새로운 세계를 선물하는가? 『찾아서』가 글쓰기로 쌓아올린 대성당이라면 이것은 어떤 공간과 시간으로 우리 삶과 문학을 보듬고 있을까? 『찾아서』가 창조한 주인공들과 사건들은 이질적인 주체들의 상호관계를 어떻게 짜나가는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을 문학의 고유한 과제라고 본다.
시간 되찾기는 사교계의 공허한 만남들, 사랑의 고뇌와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삶 가운데에서 마주친 구체적인 감각의 진리와 그것을 표현하는 예술적 창조에 호소한다. (마들렌 과자의 맛, 세 그루 나무의 부름, 냅킨의 빳빳한 느낌 등) 이렇게 되살아난 시간은 과거를 뛰어 넘어서 현재와 공명하는 ‘초시간적인’ 세계를 조직하고 형상화한다.
사랑을 주제로 삼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수도 있다. 사랑하면서 낭비하는 시간, 질투가 부르는 사랑, 고통스러운 진리, 사랑하면서 나뉘고 증식되는 자기 안의 수많은 자기들, 나 안의 ‘나들’과 너 안의 ‘너들’로 이루어진 하나이자 여럿인 사랑, 동성애에 내재하는 기만과 그것을 막으려는 무모한 시도들.
사랑의 모든 것을 담은 『찾아서』는 사랑의 백과사전일 뿐만 아니라 사랑이 이끌고 엮는 이질적인 관계들에 내재하는 분자적 흐름에 대한 기록이다. 그것은 사랑에 관한 피상적인 관찰과 일반화가 숨기고 과장하는 것들을 (고통스럽지만) 냉철하게, (불가피하지만) 기쁨의 능력을 잃지 않은 채 관찰하고 포착하고 재현하는 놀라운 임상보고서이다. 이런 사랑의 문학은 사랑의 놀라운 힘을 보여주면서 그것의 파괴력을 저지할 어떤 것을 찾는다.
한 본보기로, 사랑을 표현하는 소나타는 사랑의 행복이 연약함을 형상화한다. 그런데 이런 사랑에 대한 예술적 표현은 죽음조차 뛰어넘는다. “우리는 죽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인질로 잡은 이 성스러운 포로들도 우리와 운명을 함께 하리라. 그러나 그들과 함께 하는 죽음이라면 죽음도 덜 쓰라리고, 덜 부끄럽고, 아마도 덜 개연적인 것이 되리라.” 예술은 삶과 죽음,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넘어선 ‘고유한’ 시간을 정립한다.
사랑은 표현된 시간과 함께 새로운 시간에서 되풀이되는 힘을 얻는다. 문학은 이런 사랑을 진리가 시간화되는 경험으로 재구성한다. 사랑의 소나타가 반복되면서 힘을 얻듯이, 작품 속에 객관화된 사랑은 시간이 무너뜨릴 수 없는 고유한 세계를 빚어낸다.
양운덕(철학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헤겔 연구(「헤겔 철학에 나타난 개체와 공동체의 변증법」)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구 근·현대 사회철학에서 전개된 개인과 공동체의 상관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면서, 최근에는 질서와 무질서의 상관성에 주목하는 복잡성의 패러다임(모랭), 헤르메스적 인식론(세르), 자율과 창조성의 원천인 ‘상상적인 것’(카스토리아디스) 등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실 ‘필로소피아’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철학과 문학의 고전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소화하기 위한 모임과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