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를 던지는 놀이를 하자. 6이 나오든 2가 나오든 승패는 없다. 무엇이 나와도 좋다. 나올 수가 이미 정해져 있을지언정, 이 주사위 안에 담겨 있을 우연성 전체를 껴안아라. 영원회귀는 규칙 없는 주사위 놀이와 닮았다. 주사위를 던지는 그 단 한 번을 긍정할 수 있는 사람은 우주 전체에 대한 긍정도 가능하다.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필승을 염원하며 피로해질 것이냐, 내 손바닥 안의 모든 우연성을 긍정할 것이냐. 그 어떤 혹한과 혹서가 닥치는 삶이라도 다시 한 번을 외칠 수 있는 유희, 들뢰즈와 니체의 영원회귀를 통해 알아본다.
잠재성과 현행성, 그리고 영원회귀
들뢰즈의 사유에서 잠재성(virtualité)이라는 개념은 매력적이다. 잠재성은 우리의 다른 미래와 과거를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즉, 눈앞에 ‘현행화’되어 있는 것 이외의 배후의 존재를 상상해볼 수 있게 한다는 데서 매혹적이다. 중요한 것은, 잠재성이 언제나 현행성과 함께라는 점이다. 잠재성과 현행성이 서로가 서로를 교환하는 데서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까닭에서다. 본 강좌는 ‘안개’ 또는 ‘분신’으로 비유되는 잠재성과 현행성의 관계를 궁구하기 위해 니체의 영원회귀를 방법론적으로 취한다.
니체와 들뢰즈의 순수 긍정
니체는 모든 것이 무조건적으로 영원히 되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는 혐오스러운 것, 비루한 것으로 전락해버린 현생에 정당한 위상을 되찾아주고 싶어 한다. 니체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삶이야말로 정말 값진 것이며 순수 긍정의 대상이다. 들뢰즈는 니체의 영원회귀가 자신의 ‘차이의 존재론’을 최종적으로 언명하는 가장 완결된 형태의 선언이라고 언급하며, 영원회귀 자체를 순수한 긍정의 대상으로 사유한다. 우리는 들뢰즈가 니체를 통해 ‘다수, 생성, 우연’이 그 자체로 순수 긍정의 원리라는 자신 철학의 핵심을 정립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차이나는 것만이 되돌아온다
들뢰즈와 니체에게 영원회귀란 지금 일어난 일이 테이프 되감기 하듯 돌아가는 게 아니다. 현행적인 것 속에서 다시 현행적인 것으로 바꾸는 그런 사태가 아니다. 니체의 영원회귀로부터 엿볼 수 있는 건 들뢰즈의 잠재적인 것과 현행적인 것 사이의 상호인과성이다. 들뢰즈는 영원회귀에 대해 ‘차이나는 것’만이 되돌아온다는 자신의 말로 반복하며, 존재자들과 존재 ‘간’ 사이의 평등성에 주목한다. 이렇듯 영원회귀를 존재론의 층위에서 사유하는 일은 무한히 반복될지언정 그래도 ‘다시’를 외칠 수 있는 윤리적 인간의 형상을 그리는 데로 나아간다.
영원회귀에 대한 현대적 응답
본 강좌는 영원회귀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을 살피는 데서 시작해(1강), 영원회귀에 기반한 들뢰즈의 일의성의 ‘존재론’을 두 차례에 걸쳐 ‘반복’을 중심으로(2강), 차이’를 중심으로 알아본다(3강). 이어 순수 잠재성의 ‘윤리학’ 또한 두 차례에 걸쳐 탐구하는데, 여기서 주사위 놀이나 아이온의 시간(4강)과 사건의 윤리학이나 ‘되기’의 생성(5강) 등을 고찰할 수 있다. 들뢰즈에게 영원회귀란 무엇인가를 검토하는 본 강좌는 들뢰즈 사유의 일관된 물음의 중핵에 영원회귀 사상이 있음을 살핌으로써, 들뢰즈의 존재론 그리고 그리로 다가서려는 윤리학이 이러한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한 현대적 응답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