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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에로스를 사유하다
플라톤(Platon 기원전 428-348)의 『향연』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로티노스를 통해서 중세 철학과 신학에(아우구스티누스와 보나벤투라, 아퀴나스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이 표방하는 이성주의적 세계관이 이천 년 이상 서양의 지성사를 지배해 온 것이다.
플라톤주의의 전복, 에로스의 역사를 다시 쓰다
이 흐름을 근본에서 뒤엎은 철학자는 니체(Nietzsche 1844-1900)였다. 『비극의 탄생』을 쓴 니체가 『향연』에서 에로스론의 우열을 가리는 심판자였다면, 당연히 소크라테스(디오티마)가 아닌 아리스토파네스와 술 취한 알키비아데스의 손을 들어주었으리라. 니체에 이어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나온다. 그는 이성의 지위를 땅으로 끌어내리고 마침내 성스러운(천상의) 에로스가 본질적으로 범속의 에로스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플라톤의 디오티마가 범속의 에로스는 본질상 성스러운 에로스임을 선언했듯이 말이다.
바타유, 에로스 탐구의 종결자
니체와 프로이트의 바탕에서 태어난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마침내 철학적 에로스 탐구의 완결판을 내놓는다. 1957년에 발표한 『에로티즘』은 바타유가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이다. 에로스와 관련해서, 외적 현상의 본질에 주목하는 『향연』의 플라토닉 러브를 이해하면 플라톤 철학, 나아가서 지성주의적 세계관을 꿰뚫어 볼 수 있고, 내적 경험에 주목하는 바타유의 에로티즘을 이해하면 니체-프로이트적 반지성주의의 관점을 확보할 수 있다.
김인곤(철학아카데미 운영위원)
서울대 대학원에서 플라톤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정암학당(서양고전학연구소) 이사 및 운영위원, 철학아카데미 감사 및 운영위원으로 있으며, 방송대, 건국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 책으로 《소크라테스 이전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역), 플라톤의 《크라튈로스》(공역), 《고르기아스》, 《서양고대철학》(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