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에 대한 강의는 어쩌면 불가능한 강의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어떻게 말로 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블랑쇼가 비트겐슈타인을 뒤집어 말했듯이, "우리가 진정 말해야 할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다. 선사들의 공안은 바로 이 역설적 시도였다. 말할 수 없는 도를 말하려는, 불가능한 것을 향해 달려드는 무모한 행위였다.
이 강의는 선불교의 핵심 개념들을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즉 백 척 높이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선의 질문 방식이다. 길이 끊긴 절벽에서 내딛는 한 걸음, 답이 사라진 철벽에서 던지는 물음. 이진경은 보리달마에서 시작된 선종의 전통을 따라가며, 간화선의 화두와 공안이 단순한 논리적 유희가 아니라 깨달음을 향한 실존적 질문임을 밝힌다.
강의는 여래장과 불성 개념부터 즉심즉불과 비심비불의 역설, 무정설법론, 법신과 만법귀일의 문제까지 선불교의 주요 주제들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남전참묘(南泉斬猫), 조주의 무자(無字), 뜰 앞의 잣나무 같은 유명한 공안들도 새로운 철학적 해석과 함께 등장한다.
■ 강의특징
이 강의의 가장 큰 특징은 선불교를 단순히 종교적 가르침이 아닌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이진경은 들뢰즈, 블랑쇼 같은 서양 현대철학자들의 사유와 선불교를 교차시키며, 동서양 철학의 접점을 찾는다. 백척간두의 질문을 실존철학의 극한 상황과 연결하고, 특이성(singularity)의 철학으로 선의 '이것임(如是)'을 해석한다.
또한 고양이를 자르고 손가락을 펴는 선사들의 과격한 행위들을 기행이 아닌 철학적 메시지로 읽어낸다. 남전이 고양이를 죽인 것은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이었고, 구지가 손가락을 편 것은 세계의 특이점을 가리키는 몸짓이었다. 이처럼 난해하기로 유명한 선문답을 현대적 언어로 번역해 21세기의 '지금 여기'로 다시 불러낸다.
6강 24교시에 걸쳐 <벽암록>과 <무문관>의 주요 공안들을 다루며, 의정(疑情), 여래장, 청정불성, 무정설법, 법신, 수처작주(隨處作主) 같은 핵심 개념들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강의록이 제공되어 복습하기 좋으며, 각 교시마다 명확한 주제와 핵심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 추천대상
불교에 관심 있지만 선불교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던 사람들에게 좋은 입문 강의다. 특히 철학을 공부했거나 현대 사상에 관심 있는 수강생이라면 이진경 특유의 철학적 해석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서양 형이상학과 동양 사유의 차이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있다.
인생의 전환점이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딛는다는 말은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큰 위로가 된다. 실제 수강생 후기에서도 상실과 공허함 속에서 이 강의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선원에서 실참 수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나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자에게도 유익하다. 간화선의 이론적 배경과 화두 참구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론 중심 강의이므로 실제 수행 방법론을 기대한다면 아쉬울 수 있다.
■ 수강팁
1강은 용어가 많이 등장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벽암록, 무문관, 의정 같은 개념들이 낯설다면 강의록을 먼저 훑어보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2강부터는 구체적인 주제들을 다루므로 한결 수월해진다.
불교 기초 지식이 전혀 없다면 진입 장벽이 있을 수 있다. 여래장, 법신, 중생 같은 기본 용어들은 미리 찾아보거나 이진경의 저서 『불교를 철학하다』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특히 4강부터는 들뢰즈 철학의 특이성 개념이 나오므로 난이도가 올라간다.
한 번에 완강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곱씹으며 들어야 한다. 공안 하나하나가 던지는 질문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 생각해보라. 2회독, 3회독 할수록 이해의 깊이가 달라진다. 실제로 여러 수강생이 재수강을 계획하고 있다.
■ 수강후기에서
"백척간두진일보, 이 말 하나로 충분하다"는 한 수강생의 말처럼, 이 강의는 위기의 순간에 큰 울림을 준다. 어머니를 잃고 멍하게 지내던 이가 '길이 끊긴 절벽에서 내딛는 한 걸음'에서 자신의 상황을 발견했다. 의정(疑情)에 대한 설명, 즉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질문 자체를 온몸으로 겪으라는 가르침이 삶을 다시 시작하는 힘이 되었다.
남전참묘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는 후기도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해석과 완전히 달랐다는 것. 고양이를 죽이는 게 잔인한 행위가 아니라 제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는 해석이 탄탄한 논리로 전개된다. "철학과에서 못 배운 불교철학"이라는 평처럼, 학문적으로도 수준 높은 강의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어디서든 주인이 되고 머무는 곳마다 참됨이다. 회사에서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직장인에게 이 말이 위로가 되었다. 평상심이 도라는 말도 처음엔 뻔하게 들렸지만, 강의를 듣고 나니 전혀 다르게 들렸다는 후기가 인상적이다.
■ 마치며
선불교는 멀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과격한 선사들의 기행, 알 수 없는 선문답. 그러나 이진경은 이 불가능한 강의를 기꺼이 시도한다. 선사들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고,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시험하며,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강의는 선불교의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물음을 던진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역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부정의 논리. 그러나 바로 그 물음 속에서 우리는 알음알이를 깨고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선은 답이 아니라 물음이다. 도달할 목적지가 아니라 끝없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필경 실패로 끝날 것이기에 다시 시작하기를 그치지 않는 무모한 시도. 12시간이 넘는 이 강의를 듣고 나면, 그 무모한 시도에 동참하고 싶어질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를 보듯, 지금 여기의 특이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강사소개
이진경(사회학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 근대적 주체의 생산과 관련하여」라는 논문으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이들의 ‘코뮨’인 연구공간 <수유너머 파랑>에서 자본주의 외부의 삶과 사유를 시도하며, 근대성에 대한 비판 연구를 계속해 온 활동적인 사회학자이다. 87년 발표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로 명성을 얻은 후, ‘이진경’이라는 필명으로 ‘탈근대성’과 ‘코뮨주의’에 관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또한 박태호라는 이름으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로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