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개요
우리는 매일 '공간'이라는 말을 쓴다. 주차 공간, 사무 공간, 여가 공간처럼 물리적 넓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철학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까지만 해도 '장소'라는 개념이 훨씬 중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 장소론은 핵심적 주제였다. 그런데 데카르트, 뉴턴, 라이프니츠 같은 근대 철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장소는 점차 공간으로 환원되고 주변화되었다.
이 강좌는 17세기 근대철학부터 20세기 현상학까지, 철학사에서 '공간'과 '장소' 개념이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추적한다. 데카르트가 모든 물질을 기하학적 연장으로 환원하며 공간 중심 사유를 확립한 과정, 뉴턴의 절대 공간 개념, 칸트에 의한 공간의 주관화, 그리고 후설과 메를로퐁티가 현상학을 통해 구체적이고 살아있는 '장소' 개념을 부활시킨 과정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에드워드 케이시의 방대한 저작 『장소의 운명』을 텍스트로 삼아, 이정우 교수가 근대철학과 현대철학을 가로지르며 공간 개념의 역사를 명쾌하게 풀어낸다.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기하학의 공간에서, 신체를 지닌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인문학적 장소로의 이행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강의특징
이정우 교수는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으로 유명하다. 이번 강좌에서는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300년에 걸친 철학사의 핵심 인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데카르트, 가상디, 뉴턴, 로크, 라이프니츠, 칸트, 화이트헤드, 후설, 메를로퐁티까지, 각 철학자의 공간론과 장소론을 비교하며 개념의 변천사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단순히 철학자들의 이론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왜 17세기 천재들이 공간 중심으로 사유했는지 그들의 자연관과 세계관을 함께 설명한다. 데카르트의 이원론, 가상디의 원자론, 뉴턴의 절대 공간, 라이프니츠의 상대주의가 당대의 과학혁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또한 푸코의 판옵티콘을 통해 공간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가 되는지, 19세기 근대 사회의 공간적 특성까지 다룬다.
특히 칸트 이후 '신체' 개념이 부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공간을 인식의 선험적 형식으로 전환한 칸트, "모든 신체는 어떤 장소에 있어서의 신체"라고 말한 화이트헤드를 거쳐, 후설과 메를로퐁티가 신체를 통해 장소 개념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명쾌하게 정리된다. 전체 7강의 구성은 치밀하면서도 속도감 있게 철학사의 큰 흐름을 따라간다.
■ 추천대상
현대철학, 특히 현상학을 공부하다가 그 역사적 배경이 궁금한 이들에게 이 강좌를 권한다. 후설과 메를로퐁티가 왜 그토록 신체와 장소를 강조했는지, 그들이 극복하려 했던 근대 철학의 공간 개념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현상학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근대 철학의 공간론을 먼저 알아야 한다.
건축, 도시계획, 지리학 등 공간과 장소를 다루는 분야의 전공자나 실무자에게도 유익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공간'과 '장소'라는 단어가 사실은 전혀 다른 철학적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그리고 이 개념들이 어떤 역사적 변천을 거쳤는지 알 수 있다. 공간 디자인이나 장소 만들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푸코의 권력론이나 판옵티콘 개념이 왜 공간의 문제와 연결되는지 궁금했던 이들, 미셸 푸코의 책이 너무 어려워 포기했던 이들에게도 좋은 입문이 된다. 이정우 교수의 명쾌한 설명을 통해 푸코 사상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서양 근대철학사의 주요 인물들을 한번에 정리하고 싶은 철학 전공자나 인문학 애호가들에게도 추천한다.
■ 수강팁
이 강좌는 에드워드 케이시의 『장소의 운명』을 교재로 삼지만, 책 없이 강의만 들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정우 교수가 방대한 분량의 원서 내용을 핵심만 추려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면 박성관 역의 한국어판(에코리브르, 2016)을 참고하면 좋다.
강의는 시대순으로 진행되므로 1강부터 차례대로 듣는 것을 권한다. 특히 1-4강에서 다루는 17세기 근대 철학자들의 공간론을 확실히 이해해야, 6-7강의 현상학이 왜 혁명적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 뉴턴의 절대 공간, 라이프니츠의 상대주의 같은 핵심 개념들을 노트에 정리하며 듣는다면 도움이 된다.
5강에서 다루는 푸코의 판옵티콘 개념은 다른 강의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 철학사의 흐름을 벗어나 19세기 근대 사회의 공간적 특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감옥, 학교, 병원 같은 근대적 공간이 어떻게 권력의 도구가 되는지 보여주는데,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푸코에 관심 있다면 이 강의만 별도로 들어도 가치가 있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왜 푸코의 판옵티콘이 근대적 공간의 문제와 연관되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이정우 선생님 강의를 통해 푸코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감옥과 학교가 같은 구조이고 같은 방식으로 권력이 작동한다는 사실, 내가 결정하는 삶이 아니라 통제되고 관리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는 반응도 있다.
"엄청난 분량의 철학서를 쉽고 꼼꼼하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평가도 눈에 띈다. 케이시의 『장소의 운명』은 80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이지만, 이정우 교수의 강의로 핵심을 효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믿고 듣는 이정우 선생님한테 배웠다", "객관적이고 기하학적인 공간 개념이 장소, 그리고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신체로 이동하는 사유의 시선이 흥미로웠다"는 의견도 있다.
책을 먼저 읽고 강의를 듣는 수강생도 있다. "에드워드 케이시 책을 읽었는데 강의와 함께 들으니 복습하는 기분이다. 데카르트부터 메를로퐁티까지 범위가 커서 알아야 할 것이 많은데, 차근차근 공부하기에 좋은 구성"이라는 후기가 이를 보여준다.
■ 마치며
공간과 장소는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철학적으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공간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이며 객관적이다. 반면 장소는 구체적이고 인문학적이며 주관적이다. 17세기 근대철학은 장소를 공간으로 환원하며 수학적 세계관을 확립했다. 이는 과학혁명과 함께 근대성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현상학은 이 흐름에 저항했다. 후설과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추상적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 장소라고 주장했다. 신체를 지닌 인간은 단순한 기하학적 점이 아니라, 특정한 장소에 자리 잡고 세계와 관계 맺는 존재다. 이들의 작업으로 장소 개념이 부활했고, 오늘날 우리는 공간보다 장소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강좌를 통해 배우는 것은 단순한 개념사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인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과 연결된다. 또한 현대 사회의 공간이 어떻게 설계되고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다. 이정우 교수와 함께 공간에서 장소로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철학이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이정우(철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공학, 미학, 철학을 공부한 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셸 푸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교수, 녹색대학 교수,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철학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경희사이버대 교수로, 들뢰즈 <리좀 총서>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해박한 지식으로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가로지르며, 철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등 ‘새로운 존재론’을 모색해 왔다.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이정우의 철학 Youtube 채널, [소운서원(逍雲書院)]
https://www.youtube.com/@sowoonseo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