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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대한 사랑,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1940)
벤야민만큼 파리에 매혹당한 사람이 있었을까? 매혹은, 프루스트의 정의에 따르면, ‘감정의 중심을 타격당하는 일’이다. 청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파리를 알게 된 이후, 벤야민은 파리에 대한 사랑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파리의 마지막 증인’이 되기를 원했으며, 바로 그 소망 때문에 탈출의 기회를 놓치고 또 하나의 매혹 기제인 몰핀을 마시고 생애를 마감했다.
파리에 대한 벤야민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우울한 사랑이었다. 그건 파리에 대한 그의 사랑이 개인적인 정서를 넘어서 역사철학적 정념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본질적으로 하이네와 쌍둥이다). 역사철학의 시선으로 응시할 때, 아름다운 근대의 파리는 몰락과 파국이 예정되어 있는 고대 로마의 판타스마고리일 뿐이었다. 마치 죽음보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아름다운 공주를 깨우려는 슬픈 왕자처럼 벤야민은 이미 사망 통지서를 받은 파리를 멜랑콜리와 알레고리의 시선으로 깨워 구출하려고 한다. 그리고 한 세대 앞선 19세기 말의 파리에서 자신과 동일한 소망을 품었던 한 시인을 발견한다. 그가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원조인 샤를 보들레르였다.
또 한 명의 우울한 사랑꾼, 샤를 보들레르 (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1867)
보들레르 또한 파리와 우울한 사랑에 빠진 시인이었다. 바다에서 솟아나는 비너스처럼 대도시 군중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랑의 매혹으로 시인을 사로잡는 <지나가는 여인>처럼 파리는 지극한 아름다움으로 빛나지만 이미 검은 상복을 입고 있다. ‘순간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남기고 군중 속으로 사라진 이 여인을 찾아서 보들레르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산보객이 되고, 넝마주의가 되고, 악마의 댄디가 되고, 도박꾼이 되고, ‘할 일이 없는 헤라클레스’처럼 우울한 영웅이 된다.
서정시가 더 이상 불가능해진 정치적 퇴행의 제2제정기 파리의 거리를 꿈과 우울, 상상과 지성이라는 절름발이 두 다리로 비틀거리며 만보하는 파리의 마지막 서정 시인 - 보들레르는 그러한 자신의 가엾은 모습을 근대의 갑판 위에서 뒤뚱이며 조롱당하는 날개 큰 알바트로스에 비유한다. 그러나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이 마지막 서정시들을 핀다로스의 올림포스 송가처럼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여는 알레고리적 서정시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 결과들이 보들레르에 대한 세 개의 에세이,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중앙공원>들이다.
애도하기의 철학
벤야민은 ‘희망은 과거 안에만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건, <역사란 무엇인가>의 한 명제가 말하듯, 억울하게 죽어서 과거의 무덤 안에 묻힌 채 잊혀진 죽은 자들의 정당한 원한을 기억하고 풀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희망은 먼저 꿈꾸었으나 실현될 수 없었던 죽은 자들의 꿈들을 깨워내어 실현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의 철학은 메시아주의에 앞서 애도의 역사철학이다.
보들레르의 시들에 대한 밀착 분석을 통해서 19세기 파리의 양아치 정치를 고발하고, 그 정치가 희생시킨 시대의 꿈들을 현재화하고자 했던 그의 '보들레르론'도 거기에 속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절망적 현실, ‘세월호’ 안에 묻혀 있는 죽은 자들의 원한과 꿈을 망각이라는 더 깊은 바다로 침몰시키려는 모든 시도들에 맞서서 우리가 지녀야 할 ‘애도의 정치학’ 또한 거기에 속할 것이다. 아닌가?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