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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대는 토성의 시대다. 이 시대의 천공에서 빛나는 건 태양이 아니라 토성이다. 이 토성 아래서 행복한 사람은 없다. 군주도 인민도,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배운 자도 못 배운 자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모두가 멜랑콜리에 빠져있다. 도대체 무엇이 모두의 가슴을 메마르고 딱딱하고 차가운 흑담즙(Melancholia)으로 만든 걸까. 무엇이 오늘의 시대를 토성의 시대, 멜랑콜리의 식민지로 만들었을까.
멜랑콜리, 미친 권력의 그 이름
‘멜랑콜리(Melancholia)’는 사이비 이름이다. 그 이름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고래로 어떤 상처, 어떤 슬픔, 단 한 번도 이름의 영역으로의 입장을 허락받은 바 없고 호명된 바 없는 불가능한 애도를 지시할 뿐이다. 이 불가능한 애도 앞에서 멜랑콜리는 이중 기호가 된다. 하나는 호명할 수 없는 상처와 잃어버린 꿈 앞에서의 무력한 절망이다. 이 절망이 광기의 멜랑콜리, 군주의 멜랑콜리, 태고의 학살부터 아우슈비츠까지, 그리고 세월호까지 이어지는 미친 권력의 멜랑콜리다.
ⓒGuilherme Yagul at flick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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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광기에 맞서는 그 이름
이번 강좌에는 ‘멜랑콜리와 철학’의 주제를 다루면서 고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해석과 담론의 대상이 되어 온 멜랑콜리의 역사를 추적한다. 인간학적으로, 종교적으로, 병리학적으로, 때로는 천재와 은총으로, 때로는 저주와 질병으로 명명당하지만 그 어떤 이름으로도 붙잡히지 않은 채 텅 빈 기호로 남아 있는 멜랑콜리. 그 앞에서 담론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말들은 우울에 대한 담론들인가 아니면 담론들의 우울증인가.
김진영(인문학자, 철학아카데미 대표)
고려대 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그 대학(University of Freiburg)에서 아도르노와 벤야민, 미학을 전공하였다. 바르트, 카프카, 푸르스트, 벤야민, 아도르노 등을 넘나들며, 문학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수강생들로부터 ‘생각을 바꿔주는 강의’, '인문학을 통해 수강생과 호흡하고 감동을 이끌어 내는 현장', ‘재미있는 인문학의 정수’라 극찬 받았다. 또한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독서 강좌로도 지속적인 호평을 받았다. 현재 홍익대, 중앙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