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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근대는 이성의 시대로 불린다. 합리주의와 과학주의가 세계를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의 이성이 사물과 세계를 동일하고 불변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확신이 지배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명료함 뒤에는 폭력이 숨어 있었다. 근대의 시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차이화하는 사물과 인간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려 했고, '재현'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고정시키려 했다.
이 강좌는 근대성이 구축한 인식론적 권력 관계를 예술작품을 통해 파헤친다. 중세의 붕괴에서 시작해 바로크, 낭만주의, 사실주의를 거쳐 재현의 파괴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주요 국면들이 어떻게 근대성을 구현하고 재현하며 또한 전복시켜 왔는지를 추적한다. 엘 보스코, 벨라스케스, 다비드, 쿠르베 등의 작품들은 단순한 예술적 성취를 넘어 각 시대의 인식론적 전환을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자본주의, 민주주의, 과학기술의 조합인가, 아니면 우리의 욕망과 인식 자체를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인가? 이 강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술이라는 렌즈를 통해 찾아간다.
■ 강의특징
이 강좌의 가장 큰 특징은 예술사를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식론의 전환으로 읽어낸다는 점이다. 엘 보스코의 괴물들은 중세 세계관의 붕괴를 증언하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근대적 주체의 탄생을 포착하며,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재현 자체의 모순을 드러낸다. 각 작품은 시대의 '시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제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강사인 오경환 교수는 시카고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19세기 프랑스 정치경제학을 연구해온 학자답게 예술작품을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팟캐스트 '살롱 안드로메다'를 진행하며 쌓은 대중 소통 능력도 강의의 전달력을 높인다. 복잡한 철학적 개념들이 구체적인 그림 분석과 결합되면서 추상적이던 근대성 논의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해진다.
전체 4강 16교시, 약 8시간의 강의는 중세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를 다루면서도 각 시대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미술사와 철학사, 역사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통섭적 접근이 돋보이는 강좌다.
■ 추천대상
이 강좌는 무엇보다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유용하다. '근대'라는 말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의 욕망과 인식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이 강좌를 통해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되 양식사적 접근을 넘어서고 싶은 이들에게도 권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한 작품이 어떻게 시대의 인식론을 담아내는지 배우고 싶다면 이 강좌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특히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대한 분석은 푸코의 『말과 사물』을 염두에 둔 것으로, 철학과 예술사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인문학 전반에 관심 있는 교양인, 근대성 연구자, 미술사 애호가, 그리고 팟캐스트를 통해 오경환 교수의 강의를 접하고 더 깊은 내용을 원하는 청취자들에게도 추천한다.
■ 수강팁
이 강좌를 효과적으로 수강하려면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강의에서 다루는 작품들의 이미지를 미리 찾아보고 눈에 익혀두는 것이 좋다. 엘 보스코의 <쾌락의 정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쿠르베의 작품들을 고화질 이미지로 살펴보면서 강의를 들으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다.
또한 근대성에 대한 기초적인 철학적 배경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푸코의 인식론, 재현 개념, 바로크와 낭만주의의 특징 등을 미리 공부하고 오면 강의 내용이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지식이 없더라도 강의는 충분히 이해 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으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다.
강의가 다소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편이므로, 한 강을 듣고 나서 자신만의 정리 시간을 갖는 것을 권한다. 특히 각 시대의 '시선'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배제했는지, 그것이 현재 우리의 인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복습하면 강의의 깊이를 더 잘 음미할 수 있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예술작품을 통해 근대의 시선을 해석하는 강의는 처음"이라는 한 수강생의 말처럼, 미술사를 인식론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신선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그간 각 시대별 작품들을 양식사적으로만 이해해온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경험이었다고 한다.
다만 아쉬움도 있다. 4강이라는 짧은 분량에 중세부터 근대까지를 다루다 보니 각 주제에 대한 설명이 다소 압축적이라는 지적이다. "엘 보스코에 대한 해석이 짧아 아쉬웠다", "배경 설명이 더 필요했다"는 후기들이 그것을 반영한다. 또한 철학적 개념들이 다소 심오해서 첫 수강 때는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의견도 있었다.
가격 대비 분량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수강생도 있었다. 하지만 "짧지만 밀도 높은 알짜배기 강의"라는 평가처럼, 내용의 질적 측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는 이들이 많았다. "근대성이라는 권력 관계를 가시화하다", "재현을 파괴하는 예술의 힘을 느꼈다"는 후기들은 이 강좌가 제공하는 지적 통찰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 마치며
근대는 끝났는가? 우리는 탈근대, 포스트모던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근대적 시선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한다. 사물을 분류하고 규정하려는 욕망, 세계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배제되고 억압되는 것들—이 모든 것이 근대성의 유산이다.
이 강좌는 그 유산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예술가들이 어떻게 시대의 시선에 순응하고 또 저항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재현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음을 일깨운다. 벨라스케스의 붓끝에서 탄생한 근대적 주체는, 쿠르베의 캔버스 위에서 이미 균열을 드러내고, 다다이스트들의 작품에서 완전히 파괴된다. 이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보는 방식'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근대의 이성이 지닌 폭력성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이 강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다. 사물과 인간은 불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차이화하며 생성하는 존재들을 하나의 틀에 가두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예술은 그 폭력을 폭로하고 재현의 한계를 드러내며, 때로는 그것을 전복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강좌를 통해 우리 시대의 시선 또한 성찰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오경환 (성신여대 교수)
해밀턴 칼리지를 거쳐 시카고 대학에서 학위를 마쳤다. 2009년부터 성신여대에서 서양사를 가르치고 있으며, 한편으로 팟캐스트 “살롱 안드로메다: small talk 인문학”을 꾸려가고 있다. 『가난의 과학: 19세기 프랑스 정치경제학의 풍경』의 저자이며 함께 쓴 책으로 『고아, 족보 없는 자: 근대, 국민국가, 개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