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의 초상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업무 메일을 읽고, 퇴근 후에는 내일 할 일을 정리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실한 삶'이라 부르지만, 가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정해진 루틴에 끌려가는 걸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바로 이 질문 앞에 한 명의 인물을 세운다. 물레를 돌리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손가락을 서슴없이 잘라버리고, 부패한 수도원에는 주저 없이 불을 지르는 남자. 그는 세상의 온갖 규칙과 상식을 비웃으며 오직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 머리로 사는 사람, 몸으로 사는 사람
소설 속 화자는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 반면 조르바는 책 따위는 읽지 않는다. 그는 춤을 추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싸운다. 둘의 만남은 단순한 우정 이상이다. 이것은 '아는 것'과 '사는 것', '관조'와 '실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충돌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이 이 두 원리의 긴장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했다. 카잔차키스는 이 철학적 통찰을 조르바라는 인물로 구현했다. 조르바는 이론이 아니라 실존으로 니체 철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 운명을 긍정한다는 것
"보스, 당신은 너무 많이 생각해. 그게 당신의 재앙이야."
조르바의 이 한마디는 현대인의 아픔을 정확히 찌른다. 우리는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 살고, '~해야 한다'는 당위에 짓눌려 있다.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이 순간은 놓쳐버린다.
조르바는 다르다. 그는 실패해도 춤을 춘다. 사랑하는 여인이 죽어도, 사업이 망해도, 그는 해변에서 춤을 춘다. 이것은 무책임이 아니다. 이것은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 즉 자기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태도다.
■ 왜 지금 조르바를 읽어야 하는가
2025년 현재,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와 선택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더 많이 망설인다. '정답'을 찾으려 하지만, 정작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조르바는 이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아 있는가, 아니면 그저 생존하고 있는가? 당신의 결정은 진짜 당신의 것인가, 아니면 남들의 기대를 내면화한 것인가?
이 강의는 단순히 한 권의 소설을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다. 카잔차키스의 생애에서부터 니체의 『비극의 탄생』,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미학까지, 조르바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춤추는 조르바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본다. 책과 이론 속에 갇혀 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어나는 경험을 한다.
"삶이란 문제가 아니라 신비다. 문제는 풀어야 하지만, 신비는 살아내야 한다."
조르바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영혼의 초상 앞에서, 당신 자신의 삶을 다시 질문해보는 시간. 이 강의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