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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시대에 대한 염려(Sorge)
과학기술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우리가 호흡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듯이 현대인에게 과학기술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었다.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담당하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교사 역할을 하고 있다. 질병 치료에도 과학기술은 전근대 세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성과를 이룩하여 수명연장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과학 기술의 다른 면을 볼 것을 요구한다. 자연에 대한 지식 증대는 오로지 자연을 도구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인간 또한 자연과 마찬가지의 운명이다. 인간 또한 사물처럼 대체되고 교환되는 도구로 취급될 뿐이다. 하이데거는 이처럼 존재의 사용가치를 사취하는 것에 몰두하는 시대상을 비판하며 그것이 인간의 위기와 파국을 불러올 것임을 경고한다.
궁핍한 시대의 밤, 사유의 방법
그렇다면 인간이 처한 위기와 파국의 책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하이데거는 현대인이 처한 이 위기의 책임을 철학에게 따져 묻는다. 마땅히 사유해야 할 존재의 진리를 사유하지 않은 탓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플라톤 이래로 철학은 존재망각의 길로 들어섰다. 이로 인해 우리는 과학기술 시대임에도 존재의 빛이 사라진 밤, ‘궁핍한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이제 ‘궁핍한 시대’의 밤이 초래할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제대로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럼 제대로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이데거에게 제대로 사유한다는 것은 존재의 숲으로 들어가 존재와 대면하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의 숲에 갇히게 되면 존재는 언제나 왜곡된 방식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재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를 망각하여 맹인처럼 살아온 우리 현대인들에게 안내자를 자처한다. 존재의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것이다.
존재의 말 건넴과 응답
현대 사회는 여러모로 피로를 부추기는 사회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TV 프로그램도 ‘자발적 고립 프로젝트’나 ‘관찰 예능’이 대세다. 하이데거의 사유를 공부한다는 것은 존재의 숲을 찾아 기술문명으로부터 자발적인 고립을 시도하는 것이다. 철학의 산책로를 걸으며 도시의 소음과 기술의 분진 속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존재를 만나는 환희를 온 몸으로 느껴보자. 존재의 충만함으로 채워진 새로운 나의 일상이 가능할 것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공부하는 일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거두는 지름길이다.
이선일(철학박사)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으며, 가톨릭대, 세종대, 중앙 승가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