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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는 이슬람교가 발흥하기 오래전인 기원전 6~7세기 경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Zoroaster:이란 명 자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종교이다. 일설에 의하면 조로아스터는 기원전 650년 경 동 이란에서 태어나
20세에 출가하고 30세에 신의 계시를 받아 궁정을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펼쳤으며 77세에 세상을 떴다고 한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성립을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인 12~13세기 경으로 보고 조로아스터 역시 그
시대의 사람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로아스터교 이전의 페르시아 종교적 상황을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는 거의 없으며 조로아스터교에 관한 것도
자라투스트라 송가와 후대에 편집된 경전 아베스타(Avesta) 정도인데 아베스타
중에서도 조로아스터에 의해 집대성 되었다는 ‘가싸 아베스타’만이 믿을 수 있는 자료로써 인정받고 있다.
헬레니즘(Hellenism)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헬레니스모스(Hellenismos)' 에서 유래하는 호칭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등장으로부터 수 백 년에 이르는 문화시대를 가리킨다. 알렉산드로스는 동방원정 도상에서 많은 거점 도시를 건설하여 연장된 영토를 연결하고 그곳에 주유군을 주둔시켜 후위의 안정을 기했는데 그것이 바로 식민 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창설인 것이다.
B.C 563년 히말라야 산기슭의 샤카왕국(지금의 네팔)에서 정반대왕의 태자로 출생한 석가모니는 본래의
이름이 고타마 싣다르타(Gautama Siddartha)이다. 석가모니(Sakyamuni)란 ‘샤카족의 성자’라는
뜻이며 흔히 불리워지는 붓다(Buddha)라는 명칭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생로병사의 고통과 불평등한 계급제도의 모순에 강한 의문을 품고 왕실을 떠나 오랜 수행 끝에 성도(成道)를 이루고 설법을
통해 카스트제도에 억눌린 평민, 노예, 천민, 상공업자들과 기존의 브라만 계급에 불만을 품었던 귀족, 승려, 국왕 등을 불교에 귀의시켰다.
석가모니는 모든 삶은 번뇌이며 번뇌는 욕망에서 싹트는 것으로 욕망을 끊음으로서 번뇌를 끊고 인생고의 업(業)을 초월하여 해탈에 이른다는 사성제(四聖諦: 네가지 거룩한 길)와 이를 실행하기 위한 팔정도(八正道: 여덟가지 바른 길)사상, 그리고 인간사가 인연(因緣)의 법칙에 따른다는 연기설(緣起說)을 내세우며 이를 바탕으로 모든 집착과 무명(無明)에 의한 대립항쟁을 그칠 것과 신분평등과 차별철폐를 주장하였다.
개인의 해탈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던 부파(部派:小乘)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이 신앙의 기본이 되었으나 모든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여 타력종교로서의 신앙체계를 구축하고자 했던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 이외에 다양한 불보살들이 등장하게 된다.
각양각색의 원을 품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다불다보살의 출현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불신관이 바로 삼신불(三身佛)의 개념이다. 삼신불은 종래의 일시일불설(一時一佛說)과는 달리 온 세상에 많은 붓다들이 두루 편재한다는 '시방세계다불출세(十方世界多佛出世)'의 의미를 담고 있다.
김숙경(인문학자, 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 특임교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자크 데리다의 차연의 원리로 본 비디오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동서양 비교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사, 불교미술, 미술비평을 비롯하여 철학, 과학, 역사, 문화, 예술 전반을 광범위하게 공부하였으며, 특히 유목민 예술 연구를 통해 고대 유목민의 정신세계를 추적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소운서원, 대안연구공동체,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사로 활동하였으며, 중앙아시아학회 회원이다. 경희사이버대 교양학부 특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예술사와 미학,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는 강의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