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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현대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가장 정상적인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병들어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병들어 있는 사람들은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전복시켜버리는 프롬의 말은 삶의 양태부터 근본적으로 뒤돌아보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적’ 삶을 지향하는 우리, 과연 정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기 위해 근대로 소급해 올라간다. 신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견고한 농경 공동체가 점차 무너지고 르네상스 시기부터 최초의 ‘개인’이 등장한다. 신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은 독립성과 합리성을 대표하지만, 동시에 고립된 존재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기계적으로 노동을 팔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기 시작한 인간. 그리하여 근대부터 인간은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얻었으나, 이를 누리기보다는 고독과 불안, 무력감을 떠안는 이중적인 존재가 되었다.
『사랑의 기술』
고립된 개인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와 이어지길 간절하게 바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마저 상품화하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자신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위하기보다, 스스로 ‘사회적으로 사랑받을 조건’을 갖추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상대를 향한 뜨거운 감정을 사랑이라 믿지만, 조건에 따라 사랑하는 상대를 쉽게 교체해버릴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프롬이 볼 때 이런 것들은 사랑이 아니다. 그에게 사랑이란 ‘사랑받는 자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갈망’이며, ‘결의’로 시작하여 사랑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하는 ‘기술’의 문제이다. 결국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가능하다. 이렇게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이성애를 넘어 인류애로 나아간다.
『소유냐 존재냐』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을 발현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현대 문명의 사람들은 돈, 땅, 명성, 사회적 신분, 자식 등에 묶여 있는 ‘소유적 실존 양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지식 영역에서조차 ‘많이’ 아는 것이 중시되는 지금, 프롬은 이에 맞서 ‘존재적 실존 양식’으로 살 것을 제안한다. 과거에 축적한 것, 미래에 더 소유할 것에 매인 채 사는 것을 그만두고, 지금 여기(hic et nunc), 우리 자신으로 온전히 존재하기를 역설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롬의 심리학은 광범위한 역사와 사회구조, 개인의 심리를 아우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심리학자 김태형은 익숙한 일상의 언어로써 우리를 프롬의 심리학으로 편안하게 안내한다. 우리는 개인의 심리가 어떻게 사회와 상호작용하는지 살펴보고, 본성을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사회’란 무엇인지 탐구하게 될 것이다.
김태형(심리학자)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2005년부터 연구, 집필, 교육, 강의 활동 등을 통해 심리학 연구성과를 사회에 소개해왔다. ‘올바른 심리학’을 정립하고, 그것을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학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심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장 http://cafe.naver.com/psykimcafe에서 김태형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