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이 먼 과거에서 지금까지 연속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감수하는 방식이 하나의 진리를 드러낸다고 믿는다. 하지만 근대라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가보면 일련의 불연속들이 발견된다. 우리가 지금 사랑과 결혼에 대해 품은 관념, 육체와 정신에 대한 인식, 나아가 인간의 개념 자체가 불변의 진리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것들은 어떤 식으로 형성 혹은 발명된 것인가.
이 강의는 8개의 키워드를 통해 근현대미술을 읽으며 근대성과 근대문화의 문제들을 함께 생각한다. 도시, 자연, 문명과 야만, 혁명과 민중, 가족·사랑·성, 미디어, 죽음, 그리고 우리 근대적 삶의 가능성. 미술 작품들을 통해 근현대의 시공간을 탐사하고, 다른 방식으로 삶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가능성들을 모색한다.
■ 강의특징
채운 강사는 미술사학자이자 고전비평공간 규문 대표다. 근현대미술에서 시작해 고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가로지르며 횡단적 독해를 시도해온 그는 이 강의에서 미술 작품을 매개로 근대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한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히의 '정주(定住)의 기술' 개념이 이 강의의 중요한 화두다. 도시의 균질적인 공간에서 인간이 정주의 기술을 잃어버렸다는 것. 마을이 사라지고 이웃이 사라지면서 결국 '우리'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어떻게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기술을 되찾아 연마할 것인가, 어떻게 규격화된 삶 속에서 새로운 활력과 저항을 모색할 것인가.
1강에서는 오스만의 파리, 1850년 런던박람회와 수정궁, 1900년 파리박람회와 에펠탑을 통해 근대 도시 공간과 스펙터클의 탄생을 다룬다. 2강은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낭만주의를 거쳐 자연이 어떻게 인식되고 소비되어왔는지 추적한다. 3강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경유하며 문명이 어떻게 야만을 발명했는지 밝힌다.
4강에서는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과 혁명의 이미지를 통해 민중과 다중을 논한다. 5강은 푸코의 『앎의 의지』와 『쾌락의 활용』을 바탕으로 근대적 가족, 성, 사랑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6강은 발터 벤야민의 통찰을 통해 미디어와 스펙터클의 사회를 분석하고, 7강은 죽음에 대한 인식의 역사적 변화를 탐구한다. 8강에서는 돈 드릴로의 『코스모폴리스』를 중심으로 근대 시공간의 제도화와 탈신체화를 짚으며 우리 시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미술 작품 자체의 미학적 분석보다는 작품이 시대를 어떻게 포착하고 진단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철학, 사회학, 역사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예술과 시대가 소통하는 방식을 해명한다.
■ 추천대상
근대인으로서 나의 신체, 자연과의 관계, 사랑과 성의 관념 등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우리 근대인의 문화와 의식의 기원에 대해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누구나 환영한다.
미술을 통해 근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 푸코, 벤야민, 레비스트로스 같은 사상가들의 통찰을 미술 작품과 연결해 이해하고 싶은 독자, 명화 감상을 넘어 예술이 시대를 진단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은 독자에게 적합하다.
단, 순수한 미술사 강의나 작품의 미학적 분석을 기대한다면 이 강의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강의는 미술보다는 철학과 사회학적 담론의 비중이 높다.
■ 수강팁
전체 강의가 17시간이 넘어 상당히 긴 편이다. 1강이 141분으로 특히 길기 때문에 한 번에 몰아서 듣기보다는 교시별로 나누어 듣는 것을 권한다. 강의록이 제공되므로 강의를 듣고 강의록으로 복습하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푸코, 레비스트로스, 벤야민 등 철학자들의 담론이 많이 등장한다. 이들의 저서를 미리 읽을 필요는 없지만, 강의 중 소개되는 개념들을 강의록에 메모하며 정리하면 좋다. 특히 푸코의 섹슈얼리티 이론, 벤야민의 원본과 복제 개념은 핵심이므로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자.
강의 중 언급되는 작품들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보면서 듣는다면 이해가 더욱 생생해진다. 다만 작품 자체보다는 작품이 담고 있는 시대적 맥락에 집중해야 강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강의를 듣는 내내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결국 '나'"라는 화두를 염두에 두자. 이 강의는 과거의 미술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나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수강후기에서
한 수강생은 "8개 키워드로 미술을 읽는다는 방식이 새로웠다"며 "7강의 죽음 키워드가 와닿았다"고 평했다. 또 다른 수강생은 "강좌 끝까지 다 듣게 하는 흡입력이 있다"며 "근대라는 시공간이 실체가 아닌 이미지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 깊이 새겨진다"고 말했다.
"이반 일리히를 인용하며 던진 정주의 기술에 대한 화두는 큰 충격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도시의 소비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의 무력함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고백도 있었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역사적 변화를 접하며 죽음을 다시 한번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나눈 수강생도 있었다.
"강사님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명료해서 강의에 집중하기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미술작품 자체보다 철학 담론의 비중이 커서 아쉬웠다"거나 "내용이 무겁고 어려웠다"는 솔직한 후기도 있었다.
■ 마치며
예술은 가장 민감하게 그 시대를 포착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진단해, 그 고통에 지배되지 않고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8개의 키워드를 통해 근현대를 탐사하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근본적으로 던지는 삶의 물음들을 만난다. 나의 신체가 도시라는 공간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는가, 내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의 성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것인가.
이 강의는 명화를 새롭게 접근할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예술과 시대가 소통하는 방식을 이해하며 그 속에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각자가 우리 삶 속에서 꿈틀거리는 또 다른 몸짓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꿈꿔보자.
강사소개
채운(미술사학자, 고전비평공간 규문 대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을 다니다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근현대미술에서 시작해서 시공간을 넓혀나가다 보니 근대를 넘어 고대(古代)에 이르게 되었고, 동서양의 철학과 문화를 가로지르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철학과 문화를 현대적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겠다는 포부로, 현재 ‘고전비평공간 규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공부를 하면서 동서양의 철학, 역사, 문화 전반에 횡단적인 독해와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을 담은 그림』, 『사람은 왜 알고 싶어 할까』,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느낀다는 것』, 『예술의 달인, 호모 아르텍스』, 『재현이란 무엇인가』, 『언어의 달인, 오모 로퀜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