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신화는 세계관이다
신화가 그저 옛 이야기라면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신화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신화가 지금의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비유와 은유로서, 세계를 이야기하는 방식이자 믿음의 체계가 이야기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이름’이 ‘나’라고 믿는 것처럼, 세상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의 체계가 신화의 세계관이다. 이 강좌는 신화의 세계관을 통해 각자의 세계관 또한 생각해보기를 요구한다. 내가 ‘당연하게’ 믿고 있는 세계에 대한 관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동시에 이 강좌는 가부장제와 성경의 문자주의, 성에 대한 편견 등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 왔을지 모르는 것들에 대해 뒤흔들어보기를 시도한다. 그 시도는 아주 오랜 옛날 위대한 대여신들의 세계를 보는 데서 출발한다.
위대한 어머니 여신들
태초의 대여신은 대지의 여신만이 아니었다. 생명과 죽음, 재탄생을 관장하고, 하늘과 땅을 다 포함하며 자연 그 자체이자 순환하는 신화적 시간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대여신은 우주 그 자체였다. 선사시대의 조각상들로부터 역사시대의 기록에까지 여신 중심의 종교와 문화는 아주 오래된 것이나, 우리는 그 전사가 낯설다. 그래서 본 강좌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세계관을 뒤흔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인도-유럽 문명이나 그리스도교 문명보다 훨씬 더 오래된 대여신의 흔적들을 감지하는 경험으로 초대한다. 이를 위해 위대한 대여신들의 신화와 그녀들의 상징을(1, 3강), 그리고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여신 숭배의 흔적들을 살펴본다.
가부장제와 대여신들의 수난
인도-유럽인의 이주와 셈족의 쇄도는 가부장제와 유일신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를 보편화했다. 이 과정에서 대여신의 신화가 남성과 남신의 신화로 흡수되거나 제거되고, 여신들의 능력은 축소된 형태로만 남는다. 처녀 생식이 가능하던 대여신이 이제 남신과의 결혼을 통해 자식을 낳거나 오히려 출산력이 부정당하는 처녀로 남는다. 남신의 권능 아래 재편된 여신들은 아내나 딸이 되거나, 그마저 아닐 때는 마녀나 악녀로 불린다. 일신교에서는 성모마리아가 대여신의 명맥을 잇지만 종교적인 권력에 머무르고, 이마저도 신교에서는 부정 당한다.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종교의 정착이 여신의 권위 추락과 이어지는 추이를 살핀다(2, 4~6강).
각자의 저승 여행을 하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저승 여행을 한다(7강). 저승 여행은 수메르의 여신 인안나의 신화에서도, 그리스신화의 페르세포네 이야기에서도 이미 반복된 바 있는 주제다. 신화에서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 즉 저승 여행의 의미가 무엇일까? 본 강좌는 신화라는 이야기가 나라는 이야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저승 여행이란 자신의 내면 탐구를 위한 여로다. 나라는 존재의 전과 후를 나눌 수 있는 통과의례(비유적으로 저승)는 있었나? 없었다면 언제든 하면 된다. 정신적인 죽음의 시기를 겪은 자는 완전한 재탄생을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은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게 한다. 나를 움직이는 건 내가 믿는 이야기, 즉 신화다. 그래서, 신화가 중요한 것이다.
김영(신화학자, 인도학자)
동국대 불교 교학과 석사 과정에서 공부하다가 2004년 인도 푸나(뿌네) 대학으로 유학, 산스크리트어(싼스끄리뜨)와 팔리어(빠알리어) Low Diploma와 Certificate를 수료했다. 이어 같은 대학에서 빠알리어(남방불교와 삼장)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싼스끄리뜨어 Higher Diploma를 수료했다. 또 같은 대학에서 싼스끄리뜨 베다어(힌두교와 인도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싼스끄리뜨 빠알리 문학연구소에서 번역 및 학술 활동을 진행했다. 2016년 뿌네 데칸 칼리지에서 논문 <인도와 중국의 영웅신화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여섯 가지 키워드로 읽는 인도신화 강의』, 『바가와드 기타 강의』가 있고, 역서로 『라마야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