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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러웨이인가
철학은 세계와 주체의 서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철학의 거장들은 새로운 지식과 통찰을 가지고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혹은 그 이전부터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한다. 우리 시대의 많은 거장들 중에서 해러웨이의 행보는 특히 독보적이다. 해러웨이는 여러 번의 ‘선언’을 통해 대담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제시해 왔다. 그는 자연과 문화, 동물과 인간, 여성과 남성, 기계와 유기체 등, 전통적인 이분법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그 해체로부터 새로운 조우와 결합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그 새로운 관계로부터 대안적인 삶의 형태와 책임윤리를 말해왔다. 그래서 위기가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는 시대에 해러웨이의 철학은 그 일상을 지탱하고 있던 전제들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요구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인간과 비인간의 협동, 공-산의 삶
우리의 강의는 자연, 인간 주체, 여성 등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오랜 신화를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대 생물학에서 가져온 통찰은 개체 중심의 사고를 흔들어 놓는다. 개체가 지워진 자리에 나타나는 것은 공진화하는 행위자들의 얽힘, 관계이다. 이 관계는 주체-대상의 자리로 고정될 수 없으며, 반대로 모든 구별이 사라진 합일의 세계가 될 수도 없다. 어떤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구체적인 중요한 타자들이 함께 구성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해러웨이는 개와 인간을 비롯해 이 역동적이고 구체적인 관계 형성의 이야기들로부터 인간과 비인간 타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산의 세상, 새로운 삶의 형태와 윤리를 선언한다. 이 새로운 통찰은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지식을 활용하고 어떻게 관계 맺어나갈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는 실천의 철학이 된다.
새로운 사유와 삶으로의 초대
이 강의는 최유미 선생이 오랜 기간 해러웨이와 함께 사유한 결과물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를 풀어내는 자리이다. 토대가 되는 배경지식으로부터 구체적인 사례까지 넘나드는, 차분하지만 능숙한 설명은 방대한 해러웨이의 사유 세계를 이루는 키워드들을 이해시켜 주는 동시에 그 세계로 초대하는 안내장이 될 것이다.
최유미(수유너머104 연구원)
수유너머104 연구원. 「비활성기체의 결정안정성에 대한 통계역학적인 연구」로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초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0년간 IT 회사를 운영하였다. 지금은 동양의 오래된 한문 텍스트들과 서양 철학을 횡단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관심사는 기계, 반려종 등 주로 인간 아닌 것들과의 만남과 과학기술 담론들이다. 현재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선언』과 『개와 인간이 만날 때』를 번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