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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개요
도나 해러웨이는 1985년 '사이보그 선언'으로 사상계에 충격파를 던진 이래, 과학철학과 페미니즘, 생태학과 포스트휴머니즘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자연과 문화, 동물과 인간, 여성과 남성, 기계와 유기체 등 서구 근대를 지탱해온 이분법의 경계를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그 해체의 자리에서 새로운 조우와 결합의 가능성을 찾아낸 사상가다.
이 강의는 해러웨이의 방대한 사유 세계를 '심포이에시스(sympoiesis)', 즉 '공-산(共-産)'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한다. 자율생산(autopoiesis)이 개체 중심의 자기생산을 의미한다면, 심포이에시스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생산을 뜻한다. 개체가 지워진 자리에는 공진화하는 행위자들의 얽힘, 즉 관계가 나타난다. 이 관계는 주체-대상의 고정된 자리로 환원될 수 없으며, 동시에 모든 구별이 사라진 합일의 세계도 아니다. 구체적이고 중요한 타자들이 함께 구성하는 역동적 관계인 것이다.
코로나 시대, 일상이 무너지는 위기 속에서 해러웨이의 철학은 그 일상을 지탱하던 전제들을 다시 생각해보도록 요구한다.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강의는 낡은 신화를 해체하고 새로운 삶의 형태와 책임윤리를 모색하는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 강의특징
이 강의는 최유미 선생이 저술한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를 토대로 진행된다. 이론물리학 박사이자 IT 회사 운영 경험을 가진 강사는 현대 생물학의 공진화 개념부터 테크노사이언스까지, 복잡한 과학적 통찰을 철학적 사유와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강의는 자연, 인간 주체, 여성 등 우리 삶을 에워싼 오랜 신화의 해체에서 시작한다. 현대 생물학에서 가져온 통찰은 개체 중심 사고를 흔들어놓고, 그 자리에 공진화하는 행위자들의 구체적 얽힘을 드러낸다. '사이보그 선언'이 어떻게 자연-여성의 새로운 위상을 제시했는지, 반려종 선언이 개와 인간의 공-산을 통해 어떤 윤리를 말하는지 차분하지만 능숙하게 풀어낸다.
SF(Science Fiction, Speculative Fabulation, String Figures)를 통한 사유 확장도 흥미롭다. 괴물의 약속, 테라폴리스, 가상공간 등의 개념을 통해 가공주의와 생태학의 윤리를 설명하며, SF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지금 여기의 문제 해결과 대안적 삶의 형태를 상상하도록 이끈다. 엘렌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부터 사이보그의 글쓰기, 사변적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사유의 층위를 횡단하며 해러웨이 철학의 풍부함을 전달한다.
■ 추천대상
해러웨이 사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강의는 훌륭한 입문서가 된다. 사이보그 선언이나 반려종 선언을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그 사유의 전체 지형을 파악하고 싶은 사람, 과학철학과 페미니즘의 접점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하다.
동물권이나 생태윤리에 관심 있는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살며 인간-동물 관계를 깊이 성찰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한다. 개와 인간의 공-산, 응답-능력에서 책임으로 이어지는 논의는 반려인으로서의 자세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포스트휴머니즘이나 현대 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선 사유를 모색하는 연구자에게도 유익하다. 또한 코로나 이후 시대의 위기를 사유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모든 이에게 통찰을 제공한다.
■ 수강팁
강의 전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를 미리 읽어보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다. 강의록이 따로 제공되지 않지만, 강사의 저서가 훌륭한 교안 역할을 하므로 책을 옆에 두고 수강하길 권한다. 강의와 책의 시너지가 좋다.
해러웨이 철학에 처음 접근하는 입문자라면 자율생산, 인볼루션, 크리터, 종간후성설 등 생소한 용어들에 당황할 수 있다. 용어가 낯설 때는 잠시 멈추고 메모하거나 다시 듣기를 활용하자. 강사가 차분하게 설명하지만, 개념의 난이도가 낮지 않음을 인지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따라가야 한다.
한 강의당 러닝타임이 100~130분으로 상당히 길다. 특히 1강은 131분에 달한다. 직장 생활과 병행하는 수강생이라면 교시별로 나눠서 듣는 것을 추천한다. 각 교시가 20~40분 정도이므로, 하루에 1~2교시씩 소화하는 방식이 집중도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강의 중 등장하는 구체적 사례들—여우원숭이의 고통에 응답한 Ako 프로젝트, 개와 인간의 훈련 과정 등—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보자. 추상적 개념이 일상의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질 때 해러웨이 철학의 진가가 드러난다.
■ 수강후기에서
수강생들은 '심포이에시스'라는 키워드로 해러웨이의 방대한 사상을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사이보그 선언부터 반려종 선언까지 이어지는 해러웨이의 사유가 하나의 흐름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었다는 반응이다.
강사의 과학철학 박사 경력은 현대 진화론과 공진화 개념을 설명하는 데 큰 강점으로 작용했다. 복잡한 철학적 개념을 현대 생물학과 연결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 많다.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는 능숙함 덕분에 해러웨이의 사유 세계가 더욱 풍부하게 다가왔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4강 '반려종 선언'과 '응답-능력에서 책임으로' 부분은 많은 수강생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수강생들은 개와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소유가 아닌 공진화하는 얽힘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죽여도 되는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공-산의 윤리 원칙은 생명에 대한 근본적 책임윤리로 각인되었다.
SF를 통한 사유 확장을 다룬 3강과 5강도 흥미로웠다는 반응이다. 괴물의 약속, 테라폴리스, 실뜨기, 캐리어백 이론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개념들을 통해 대안적 삶의 형태를 모색하는 과정이 신선했다고 한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지적되었다. 한 강좌당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 완강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 입문자에게는 용어와 개념의 난이도가 높다는 지적, 강의 중간에 엘렌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 개념이 갑작스럽게 등장해 흐름이 끊긴다는 평이 있었다. 음성중심주의 비판에 대한 설명이 해러웨이 사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해 약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시의적절한 강의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지탱하던 전통적 이분법의 전제들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 마치며
해러웨이의 철학은 세계와 주체의 서사를 다시 쓰는 작업이다. 그는 낡은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우의 가능성을 찾아내며, 그 관계로부터 대안적 삶의 형태와 책임윤리를 제시한다.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지식을 활용하고 관계 맺을지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는 실천의 철학이다.
이 강의는 해러웨이와 오랜 기간 함께 사유한 최유미 선생이 그 결과물을 풀어내는 자리다. 토대가 되는 배경지식부터 구체적 사례까지 넘나드는 설명은 해러웨이의 사유 세계를 이루는 키워드들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그 세계로 초대하는 안내장이 된다.
인간과 비인간 타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산의 세상, 새로운 삶의 형태와 윤리.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해러웨이의 질문에 응답하며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갈 준비가 되었다면, 지금 이 강의의 문을 두드려보자.
최유미(수유너머104 연구원)
수유너머104 연구원. 「비활성기체의 결정안정성에 대한 통계역학적인 연구」로 카이스트 화학과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기초과학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10년간 IT 회사를 운영하였다. 지금은 동양의 오래된 한문 텍스트들과 서양 철학을 횡단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관심사는 기계, 반려종 등 주로 인간 아닌 것들과의 만남과 과학기술 담론들이다. 현재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선언』과 『개와 인간이 만날 때』를 번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