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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에 ‘숨은 신’이 있다!
이 강좌의 핵심 개념인 ‘숨은 신’. ‘숨은 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이다. 플라톤에게 ‘숨은 신’은 『국가』에 등장하는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해당한다. 즉 인간은 동굴 외부의 빛에 의해 생긴 자신의 그림자를 신으로 생각하게 되며, 이때의 그림자는 인간 자신의 허상과 같다. 이렇게 본다면 ‘숨은 신’이란 인간 자신의 욕망의 투영과 허상일 것이다. 한편 게오르그 루카치는 신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극은 하나의 놀이다. 신이 구경하는 놀이이다. 신은 단지 관객일 뿐, 배우인 인간의 대사와 움직임에 결코 끼어들지 않는다.” –루카치, 『비극의 형이상학』 (1908)
루카치에게 신은 인간사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단지 멀리서 바라만 보는 존재다. 이른바 루카치의 ‘숨은 신’은 관객으로서의 신이다. 루카치의 신 개념에 영향을 받은 루시앙 골드만은 저서 『숨은 신』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숨은 신’ 개념을 설명한다.
“…신은 부재하며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에 결코 인간에게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적 인간은 단지 하나의 표현 형식만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바로 ‘독백’ …” –루시앙 골드만, 『숨은 신』(1959)
이렇듯 루카치에게 신이 ‘관객으로서의 신’이었다면, 루시앙 골드만에게 신은 ‘부재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신 때문에 인간은 독백한다. 즉 루시앙 골드만에게 인간의 독백은 다름 아닌 ‘숨은 신’을 향한 표현 형식인 것이다.
‘숨은 신’은 다양한 욕망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신’이 된다.
이 강좌는 이러한 ‘숨은 신’의 개념을 통해 문학 속에 존재하는 ‘숨은 신’을 살펴본다. 한편으로는 인간 욕망의 투영이며 허상인 ‘숨은 신’이자 또 한편으로는 부재함으로써 인간의 독백을 이끌어내는 ‘숨은 신’. 그렇다면 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독백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문학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의 ‘숨은 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 인간을 억누르며 인간과 함께 하는 무의식 혹은 거대한 초자아
2. 속류교양 속에 숨어 있는 ‘상품신’으로서의 상업주의
3. 민주주의를 가장한 파시즘
4. 극단적 종교주의
5.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적 의미로서, 일시적 순간으로 나타나는 존재
시, 소설, 영화, 성경 속에 깃든 ‘숨은 신’을 해부한다.
우리는 시, 소설, 영화, 성경 등의 다양한 텍스트 속에서 ‘숨은 신’의 구체적인 형상을 볼 수 있다.
1강. 너의 증환을 사랑하라①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2강. 너의 증환을 사랑하라②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죄와 벌』에서 ‘숨은 신’은 무의식이다. 인간이 의식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죄와 벌』에서 도스토예프스키는 폭력의 문제를 통해, 이 사실을 조명한다. 이로 볼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의식과 결핍에 대한, 증상과 환상의 기록자다.
3강. 바보 이반, 톨스토이의 『참회록』과 『부활』
4강. 윤동주에게 ‘이웃’은 무엇인가 - 윤동주
톨스토이와 윤동주의 ‘숨은 신’은 낮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며, 이러한 신은 민중성을 담지한 ‘숨은 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숨은 신’을 통해 참회와 구원, 고향과 디아스포라의 주제가 펼쳐진다.
5강. 가벼운 인생의 무거운 요구 - 엔도 슈사쿠 『침묵』
엔도 슈사쿠의 『침묵』 속의 ‘숨은 신’은 인간의 본질적인 아픔과 함께 하는 ‘숨은 신’이다. 『침묵』 을 통해 우리는 종교와 인간의 가볍고도 무거운 관계를 가늠할 수 있다.
6강. 그늘, 은밀한 은혜 - 이청준 『벌레 이야기』와 이창동 영화 <밀양>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와 이창동의 <밀양>에서는 서로 다른 ‘숨은 신’이 대결한다. 이들 작품에서는 죄인이 자기 나름대로 신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용서를 내린다. 그러나 이러한 은총은 값싼 은총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값싼 은총에 머물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서의 진정한 은총으로 나아가야 한다.
7강. 느닷없이 다가오는 낯선 문제들 –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자살 기도자와 사형수의 만남을 통해 사랑과 죽음이라는 ‘숨은 신’이 뒤엉킨다. 각자의 상처가 교환하는 장소와 시간을 분석하며, 공지영 문학의 계보학을 구성해본다.
8강. 하루키 시뮬라크르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숲』, 『1Q8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국이라는 ‘숨은 신’을 분석한다. 또한 하루키의 시뮬라크르를 통해서 옴 진리교나 천황제 등, 일본 사회를 붙들고 있는 무의식과 초자아의 실상을 파악한다.
위 강좌들을 통해 우리는 해당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풍부한 해설을 얻을 수 있다. 하나의 문학 작품에 숨어 있는 신은 텍스트에 숨어 있는 '그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늘 속에서 보고 듣고 사유하며,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한 '깊은 심심함'의 경지에 도달해보자.
김응교(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