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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현대적 미술'인가?
‘모더니티’ 개념과 함께 등장한 현대미술은 넓게는 19세기 세잔부터 시작하지만, 좁게는 20세기 미술,
그중에서도 지난 100년간 미술계에서 일어난 상당한 변화를 좀 더 특화시켜 설명하기 위해 ‘20세기 전반의 미술’만을 지칭한다. 대신 2차대전
이후의 미술은 ‘전후 미술’ 혹은 ‘컨템포러리’, ‘포스트모던’ 등의 용어로 세분되어 왔다.
이 강좌는 20세기 후반기의 미술이자,
포스트 모더니즘마저도 종결된 ‘포스트-포스트모던’, ‘포스트-컨템포러리‘에 속하는 가장 최근의 미술을 다룬다. ‘미술이 아닌 것을 가지고 미술을
하는 오늘날’, 전통적 미적 매체는 정말로 끝났는가? 아니면 아직 미술은 자신만의 ‘특권’을 가지고 있나? 현대 예술가들이 새로운 미디어에
어떻게 반응하며 작품을 만들어왔는지 살펴보다 보면, ‘현대적 미술’이 서 있는 토대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포스트-미디엄(post-medium)과 새로운 미적 인터페이스
현대 예술은 ‘포스트-미디엄의 예술’이다. 가타리가 처음 언급한 이후 이 개념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평론가 로절린 크라우스는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에 ‘예술을 예술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상징으로서 이를 사용했지만, 뉴미디어 아트 평론가 마노비치는 계산 기술과 재현 기술로부터
시작된 ‘컴퓨팅’ 기술이 어떤 식으로 예술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튼 ‘미적인 미디어’와
‘미적이지 않은 미디어’를 구분 짓던 근대적 가치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으며,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과 창작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곧 포스트-미디엄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디어와 미디어를 섞어서 재발명하는 미디어 리인벤션 즉,
미디어 믹스를 낳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디어 믹스를 그것들이 연결되고 있는 대인형식인
인터페이스에 집중하여 이론화해보자. 중요한 것은 새로운 미디어 혹은 미디어를 믹스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떠한
형식으로 믹스하느냐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식으로 소통하느냐’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현대미술은 이 과정에서 세분화된 몇 가지 미디어 범주
중 하나를 중점 미디어로 사용할지언정, 그에 그치지 않고 다른 범주들과 결합되어 있다. 말 그대로 ‘미디어믹스’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미술'이다
팝아트의 형식에 ‘메시지’를 담은 ‘캐피탈리스트 리얼리즘’의 기수 시그마 폴케, 팝아트를 추상회화로 변형한
게르하르트 리히터, 폴 오스터의 <뉴욕 이야기 : 고담 핸드북>에 등장하는 인물로 분해 픽션을
현실화했던 소피 칼, 그리고 온 카와라와 같은 개념 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약물 키페인팅을 시도했던 데미안 허스트까지. 이 강좌는 미소녀에
대한 오타쿠들의 호감을 뜻하는 ‘모에’를 예술사적으로 되짚어보기도 하고, 머릿속의 아이디어와 실제 제작이 분리된
‘디세뇨’ 작품을 살펴보거나, 미국 오타쿠 게이 작가 리처드 프린스의 ‘말보로
카우보이 시리즈’을 통해 ‘농담 페인팅’을 엿보는 등 ‘현대적 미술’의 주요 부분을 개괄해 볼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이 큰 영향을 끼친 90년대부터 2010년까지는 작가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미디어에 깃발을 꽂는
미디어 믹스의 시대였다. 앞으로 도래할 미술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제 그 답을 직접 찾아 나서
보자.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뒤, 미술이론과정에서 석사학위를, 미술교육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계간 ≪공예와 문화≫ 편집장, 한국미술연구소/시공아트 편집장,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미술•디자인 평론가이자 DT네트워크 발기인, 홍익대 BK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서울시립대와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사 및 디자인사를 주제로 활발히 강연 중이다. 또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로서, 한국사회에 작은 변화를 이끌고 있다.